에세이
누구나 가식적이다.
가식적이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가 언어란 걸 쓰는 순간, 아니,
내 생각을 대신해 표현하는 도구를 택할 수밖에 없는 한, 즉 꾸밈이란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사람들은 가식을 원한다.
오히려 비참한 그래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진실을 보기보다 진실이길 바라는 것을 보기 위해 가식을 원한다.
다만... 그것이 어떤 가식이냐가 문제다.
그 가식이 누굴 위한 가식이냐가 문제이며,
누구를 왜, 속이느냐가 문제다.
아마도 그 대답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런 가식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가식으로 둘러싸고 포장해도
잠시 진실을 외면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답이 나오는 문제들이 있다.
당시에는 진실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잠시 가식이란 가면을 쓰고
나와 상대를 그리고 세계를 응시하지만...
결국 또 다른 가식의 가면을 쓰기 전
이전의 가식을 벗어던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고..
진실을 맞대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진실은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말이다.
이제, 진실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말이다.
밝혀진 진실로부터 나를 보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말이다.
진실은...
가장 직접적이고 자기 지시적인 그래서
자기 명증적인 내성(introspection)을 통해서 밝혀진다..
그때 깨달은 진실을
누군가에게 다시 표현하려고 한다면 또다시..
가식적일 수 있겠지.
그러나...
자신은 안다.
자기가 무엇을 속였는지,
어떻게 합리화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진실을 맞대면하는 고통을 맞이할 준비가 될 때... 그때까지는... 잠시 가식이란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하루에 울림을 주었기를 바라며 응원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