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확률 1의 인연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 수많은 인연의 경우의 수 너머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
“이건 분명 인연이야.”
그런 말로 나는 가끔 마음을 도닥인다. 하지만 인연은 결코 운명처럼 손쉽게 찾아오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연결된 거대한 확률 속, 작은 가능성의 기적만도 아니다.
뉴욕의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의 이야기가 있다.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렸지만, 차마 연락처 하나 묻지 못한 채 헤어진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만 품은 채 돌아서지만, 다음날 같은 시각, 같은 카페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친다. 서로를 그리워한 마음이 그 만남을 불러낸 것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인연이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내는 필연임을. 만남의 확률은 떠도는 운명 속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인연은 마음에 기댄 선택이며, 어쩌면 확률 1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즉 우연을서로의 마음과 의지가 겹쳐 확률 1에 수렴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환경,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그 주변의 인연들까지도 결국 비슷한 조건과 공간 안에 머문다. “세상 참 좁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실은 이미 이어져 있던 인연들이 다른 모습으로 교차할 뿐이다.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미국 사회에서는 다섯 단계를 거치면 누구나 유명 배우와 연결될 수 있고, 한국에서는 그 단계가 평균 3.5명이라 했다. 세상이 넓어 보여도,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한때 나는 인연을 신비롭고 설명할 수 없는 운명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언젠가 깨달았다. 만남과 이별은 서로의 선택과 서사로 쌓여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불교에서는 그것을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부른다. 때가 무르익을 때 비로소 맺어지고, 때가 다하면 흩어지는 관계. 그렇기에 인연이 닿는 동안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것이 최선임을 이제는 안다.
물론 마음을 다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끊어진 인연의 원인을 늘 나에게서 찾으며 자책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인연은 내 의지 하나로 이어지는 것도, 오롯이 내 잘못으로 끊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 역시 누군가의 곁을 떠났고, 또 어떤 인연은 이유도 모른 채 저절로 멀어졌다. 그 모든 이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내 곁에 머무를 수는 없다. 일상의 궤적이 잠시 겹쳤다가, 어느새 각자의 길로 멀어진다. 그래서일까. 겹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하고 싶다. 어느 겨울날, 수업을 마치고 내리는 함박눈을 우산 너머로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쌓이고 남는 인연은 쉽지 않구나. 그럼에도 이미 쌓여온 인연의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새삼 떠올린다.
이별은 꼭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대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단절로부터 끝이 났다. 누군가 그 단절 위에 이유를 덧붙이지만, 이미 마음에서부터 멀어진 뒤였다.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무너질 위기 앞에서도 누군가는 다시 손을 내밀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인연은 거기서 멈춘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처럼, 침몰하는 배를 아무도 구하지 않을 때,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헤어짐이란 단순히 거리를 두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인연은 멍하니 기대한다고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뜻밖에 맺은 인연이라면, 그것이 좋은 인연이 되도록 조금은 더 애쓰며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다듬어진 마음이야말로, 또 다른 만남의 문을 열어주는 힘이 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수많은 경우의 수 속에서도 우리는 만났다.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만들어낸 ‘확률 1의 인연’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믿는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하루에 작은 울림이 되길 바라며, 응원은 제 글을 이어가는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