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영화

by 최지윤

《초콜릿》과 당위에서 벗어나는 삶


이 글은 이전에 <깨진 거울을 다시 맞추며>라는 나의 에세이에서 영화평으로 소개한 글이었는데, 최근 브런치 작가님이신 박성봉 님의 글을 읽다가 여전히 내가 당위에 매인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글을 수정해 가며 다시 올려보는 것이다.(참고로 비포선라이즈 시리즈 마지막인 비포선셋에서 나온 셀린의 대사처럼 사람 기질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닌가 보다. 아무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원래기질로 돌아가기가 쉬우니 말이다.)

수년 전 비디오로 본 영화였지만, 나는 주인공으로 줄리엣 비노쉬와 조니 뎁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내게 남긴 메시지는, 단순한 배우들의 매력을 넘어선 삶과 자유에 대한 통찰이었다.


영화 《초콜릿》은 “당위(ought)”에 얽매인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사회적 규범일 때도 있고, 스스로 만든 내적 규범일 때도 있다. 이 당위는 때로 우리를 옥죄어 삶을 힘겹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모든 당위에 매일 필요는 없다”라고.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주인공과 딸은 북풍을 따라 떠도는 삶을 산다. 바람이 불면 마을을 옮기고, 새로운 마을에서 초콜릿을 판다. 이번에 정착한 마을은 청교도적 규율이 철저한 산간 마을이었다. 모녀가 파는 초콜릿은 주민들에게 달콤한 유혹이자, 금기였다. 한 번 맛보면 멈출 수 없는 그 달콤함은, 곧 모녀와 마을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금기를 깨는 이방인 모녀와 폐쇄적 청교도 마을의 대립”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리엣 또한 당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북풍이 불면 떠나야 한다는 내적 규칙을 따라야 한다. 결국, 주인공 자신도 ‘~해야 한다’는 족쇄에 매인 삶을 살아온 셈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을 나누어 보면,

마을 사람들: 사회적·외적 당위에 얽매인 삶 (“이렇게 살아야 한다”)

줄리엣과 딸: 내적 당위에 매인 삶 (“북풍이 불면 떠나야 한다”)

집시(조니 뎁): 모든 당위로부터 자유로운 삶

클라이맥스에서 모녀는 다시 북풍을 따라 떠나야 한다. 딸은 정착을 원하지만, 모녀는 당위라는 바람에 휘둘려야 한다. 이 장면은 당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충돌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삶, 사회적 규범내적 규범 모두로부터 잠시 벗어나, 달콤한 초콜릿처럼 자유로운 순간을 즐기는 삶.

한마디로,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쫌,!! 당위에서 벗어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