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어둠에서 빛으로

by 최지윤


한 걸음

한 걸음이면 됐다.


깊고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단 하나, 그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였다. 그 걸음을 내딛지 못해 주저앉거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을 떼고 나면 비로소 빛을 마주하게 된다. 그제야 알게 된다.

우리가 빛이라 믿는 순간들 대부분은, 그 한 걸음을 내디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한때 나는 휠체어에 의존한 채, 누군가가 데려다 놓은 자리에서 멀거니 주변을 바라보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움직일 수도, 결정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었다. 내 몸은 갇힌 듯했고, 시간은 멈춘 듯했다.


보바스 병원 2층 통로 어딘가, 겨울 오후. 창밖으로 흩날리던 눈발.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영원히 이 자리에 머무는 존재가 되는 걸까.

”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은 마치 고장 난 톱니바퀴처럼 반복되었다.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장애’가 어떤 삶의 형태인지, 그것이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하거나 빼앗는지를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나니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적은 특별한 날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기적은 숨어 있었다.휠체어에서 일어나 앉는 것, 혼자 힘으로 샤워를 마치는 것,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그리고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드는 것까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들이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기적 같은 순간들이었다.

재활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고요한 특권이다. 사회적 성취의 압박으로부터 잠시 자유로우면서도,

남아 있는 능력을 총동원해 일상을 되찾는 데 몰두할 수 있다. 내게 목욕을 스스로 하는 일, 머리를 말리는 일, 단장하는 일은 단순한 위생이나 꾸밈이 아니라 ‘존엄의 회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상을 차려주고 싶다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내 존재가 의미가 되기를 바라는 자연스러운 갈망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장애를 결핍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장애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게는 단 몇 걸음을 걷는 일조차 기적이었다. ‘나는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 이라는 감각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재활은 그 감각을 회복하는 길이었다.


지금을 보라. 이전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역동적인가. 남들이 보면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재활 이후 나는 이전보다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고, 인간관계를 스스로 맺고 끊을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경제적인 능력은 숙제로 남아 있고, 물리적 한계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시간을 스스로 조직하며 살아간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얻은 진짜 회복이며, 장애를 딛고 선 나만의 성공이다.

나는 이런 내가 대견하다 아프기 전과 완전히 같지는않지만, 전처럼 똑같을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회복해 나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 만으로 나는 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나는 지금도 굼벵이처럼 느리게 전진한다. 하지만 그 굼벵이도 언젠가 껍질을 깨고 매미가 되었고, 애벌레는 나비가 되었다.

누군가는 나의 변화를 작고 더딘 일이라 치부하겠지만,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멋진 길을 걸어왔는지를 안다.그리고 앞으로의 나도 기대된다.

단순히 노화하는 여타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이미 ‘한 번 멈춘 삶’을 다시 살아 낸 경험이 있으므로, 더 단단하게, 더 뜨겁게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 두 번째 삶에서, 나의 신은 ‘엄마’였다는 것을. 나를 낳아주신 첫 번째 삶도,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세상으로 내보내 준 두 번째 삶도, 모두 엄마가 만들어주신 삶이었다.

엄마는 내 보호자이자, 재활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코치이자, 친구였다.처음 재활 병원에서 평행봉을 잡고 설 때도, 내 옆에는 엄마가 있었다. 다리가 떨리고 금세 주저앉아 버렸을 때, 엄마는 두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걷는 연습을 하면서 ‘걸음’이 단순히 발을 내딛는 행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장애를 입고 엄마를 힘들게했어도 한번 도 속상한 내색을 하신적이 없었다

번은 내가 정말 궁금해서 "엄마는 속 안상해?"라고 물었을 때 "한 번 엎지러진 물 어쩔 것이냐, 인자 너도 편한 세상 살아라"그 말 속에서 나는 오히려 다시 한 발을 내딛을 힘을 얻었다.


우리는 병원 복도를 수백 번도 넘게 걸었다. 누군가 보기엔 지루하고 고단한 훈련일 뿐이었지만, 나와 엄마에게 그것은 매번 새로운 기적이었다. 내가 앞으로 걸어 나가면, 엄마는 내 옆에서 시선을 놓지 않은 채 뒤로 걸으며 내 발끝을 살짝 쳐 주곤 했다. 똑바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내 왼쪽 환측 다리가 조금이라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점차 균형을 찾아갔고, 마침내 엄마의 손을 붙잡은 채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어둠을 지난다. 하지만 그 길을 나 혼자만 걸은 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각자가 각자에게 ‘한 걸음을 내딛도록 이끄는 손길’이 되어줄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결국 마주하는 빛, 그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엄마일 수도, 친구일 수도, 배우자일 수도, 돌봄일 수도, 책일 수도, 신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 손길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