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 다가와 준 사랑
"○○아, 결혼은 말이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거야. 돈? 재벌이 아닌 이상 다 거기서 거기야."
대학원 다닐 때 친한 선배가 해준 그 말을 나는 오래 마음에 품고 살았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고맙다’이다. 그는 내 걸음이 느리다고 놀리면서도,
언제나 나보다 천천히 걸으며 내 곁을 지키거나, 내 뒤에서 내 걸음을 기다려준다.
사실 그의 걸음은 빠르다. 그만큼 그는 내 삶 속으로 빠르게 들어왔나 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챙기고, 외출할 때면 시선을 늘 나에게 고정한다.
특히 낯선 여행지에서는 혹시 내가 다치거나 넘어지지 않을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를 지켜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하면서도 마음이 애틋해진다.
보조기를 신기는 일도 이제는 그에게 익숙해졌다. 내 발을 조심스레 맞춰주고 고정해주며, 때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통증까지 미리 알아채 배려한다.
함께 여행을 갈 때면 조식으로 사발면이나 라면을 먹는 것이 국룰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과는 정말 라면만 같이 먹어도 좋은 사람이다.’ 한 그릇 안에 그의 마음이 담겨 있고, 그 정성이 내 하루를 채운다.
그의 취미는 조금 독특하다. 브론즈 조각 작품들을 수집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동 투구 하나에 반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둘 모으며, 그림이나 다른 예술 영역으로까지 취미를 넓혀가고 있다.
남들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조각상 하나에도 그는 시간을 들여 닦고, 바라보고, 음미한다. 그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는 장애를 가진 내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먼저 알아본 눈을 가졌다. 나는 그 눈을 믿는다.
그는 나를 동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를 남들과 다르지 않게, 혹은 그 자신과 다르지 않게 대했고, 나 역시 그런 그의 태도에 마음이 열렸다.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서로를 ‘괜찮다’고 여기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괜찮고, 지금 모습의 그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해주는 것.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그를 한 권의 책처럼 느꼈다. 읽을수록 재미있고, 다음 페이지가 기대되는 책.
처음에는 ‘이 사람 참 흥미로운 사람이네’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중반쯤에는 확신했다.
“아, 이 책 참 좋은 책이구나.”
가끔은 펼쳐놓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 있다. 그가 그런 사람이다. 소장하고 싶은 책,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사람.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주변 공기가 달라진다. 숨이 깊게 들이마셔지고, 가슴이 뛰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대신 웅장해진다.
이제는 믿는다.
좋은 사람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기적처럼 온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기적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