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벽 네 시였다.
방 안에는 모니터 불빛 하나만 남아 있었다. 형광등은 꺼진 지 오래였다. 공기는 물속처럼 고요했다. 자판 위엔 열이 남아 있었고, 손끝에는 땀이 묻어 미끄러졌다.
나는 방금 민서에게 보낸 메일을 다시 열었다. 보낸 편지함을 눌렀다가, 발송 취소 버튼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이미 떠난 문장을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영원’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지웠다. 그 자리에 ‘오늘’을 적었다가, 다시 ‘지금’으로 줄였다. 요즘 나는 단어를 줄이는 데 익숙했다. 말을 줄이면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예전엔 그랬다. ‘영원히 네 곁에 있을게.’ ‘평생 네 편이야.’
그런 문장들을 아무렇지 않게 눌러 보냈다. 그 말들이 나를 더 강한 사람으로 보여줄 거라 믿었다. 약속은 언제나 나보다 컸고, 나는 그 뒤에 숨어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내 손에 들고 있기엔 너무 크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더 짧은 단어들만 붙잡았다. 오늘. 지금. 괜찮아. 여기.
메일은 새벽 세 시 오십팔 분에 나갔다. 두 해 전, 서로 연락을 끊자고 합의했던 그 사람에게. 그리고 다시는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지 말자던, 바로 그 사람에게.
창밖에서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지나갔다. 나는 그 소리와 함께 잠시 멈췄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은 잠시 빛나더니 이내 어두워졌다. 그 어두워지는 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아주 짧지만, 내일과 영원 사이에 놓인 다리처럼.
그 다리 위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건 다시 시작일까, 아니면 마지막 인사일까.
어느 쪽이든 오늘 안에 두면 괜찮을까.
노트북을 천천히 덮었다. 방 안이 다시 잠잠해졌다. 남은 건, 숨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