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질문의 종착지인가, 질문의 완성인가

아직 다 묻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by Henri

새벽이 깊어지면 유독 선명해지는 생각들이 있다.

내가 평생 품고 살았던 이 숱한 물음표들은,

언젠가 내 숨이 멎고 아무것도 묻지 못하게 되는 날 다 어디로 가버릴까.

평소엔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서둘러 밀어내 버리곤 하지만,

오늘 같은 밤엔 유독 그 서늘한 생각 곁을 떠나지 못하겠다.

이 글은 그저,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던 밤들이 토해낸 흔적이다.


사실 죽음을 글로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고, 진짜 죽음을 아는 이들은 이미 아무 말이 없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거대한 공백을 들여다보며 더듬더듬 철학을 흉내 내거나 기도를 올리는 일뿐이다.

알 수 없으니,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있는 곳에 죽음은 없고, 죽음이 있는 곳에 나는 없다."

어릴 적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땐 묘한 위로가 됐다.

어차피 죽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겠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런데 오래 곱씹을수록 이 말이 못내 서글프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그건 사건이 아니라 그냥 완벽한 '삭제'니까.

내가 쓰던 문장이 끝을 맺는 게 아니라, 펜을 쥐고 있던 손 자체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랄까.


이성적으로는 완벽한 논리다.

죽음은 경험될 수 없으니 두려워할 필요도, 물음을 던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미련 같은 것이 자꾸만 딴지를 건다.

그 건조한 논리만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분명 우리 삶에는 있다.


독배를 마시던 소크라테스는 어땠을까.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끊임없이 물었다.

영혼이란 무엇인지, 산다는 건 무엇인지.

솔직히 그리고 두렵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는 그 끔찍한 두려움을 꾹꾹 눌러 담아 질문으로 바꾸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기어이 떠났다.

그게 무슨 뜻이든 나에게 중요한 건 이거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세상에 '질문의 씨앗'을 남겼다는 것.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살았다면,

그의 철학이 그토록 묵직하게 다가왔을까?

아마 일상의 소음 속에 바스러졌을 거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마감'이 있었기에,

그의 삶 전체가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텍스트가 될 수 있었다.

묻던 사람이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

그 물음은 역설적으로 한 개인의 굴레를 벗어나 세상의 것이 된다.


우리의 질문이 그토록 절박하고 무거운 이유도 결국 우리에게 '끝'이 있기 때문이다.

마감이 없는 원고는 영원히 미완성 초고로 남을 뿐이다.

그러니 죽음은 나의 생각들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펄펄 끓게 만드는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언젠가 더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는 날을 맞이할 거다.

그때 내 머릿속을 맴돌던 이 조각난 생각들은 누군가에게 가닿을까,

아니면 그냥 허공으로 증발해 버릴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 흔적 없이 잊힐까 봐 두렵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두려워하고 조바심을 낸다는 것 자체가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끝날까 봐 겁을 낸다는 건,

아직 내 안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많다는 뜻이니까.

결국 죽음에 대한 이 지독한 공포는,

뒤집어 보면 삶에 대한 처절한 애착이자 긍정이었던 셈이다.


애벌레가 번데기 속에서 완전히 녹아내린 뒤에야 나비로 날아오르듯,

내가 남긴 얕은 물음들도 내 목소리가 지워진 뒤에야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다시 피어날지 모를 일이다.

그게 질문의 종착지인지 완성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희망을 품어볼 뿐이다.


결국 죽음을 쓴다는 건,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눈물겨운 작업이다.

우리는 끝을 알기 때문에 묻고,

묻기 때문에 살아있다.


언젠가 다가올 나의 마지막 날,

내가 던질 마지막 물음표가 무엇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게 끔찍한 비명이나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세상을 향해 호기심을 반짝이는 작은 경이로움이었으면 좋겠다.

창밖을 바라보는 눈이 감기는 그 찰나의 순간까지도,

아직 다 묻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왜?"라고 묻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머물며 치열하게 사랑하고 살아냈다는,

가장 나다운 증거일 테니까.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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