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는 나는 더 살아 있는가

숨이 낯설어지는 밤

by Henri

밤이 깊어지면 가끔 내 숨소리가 낯설어질 때가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폐는 움직이고, 심장은 뛴다.

피가 흐른다.

평소엔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던 내 몸의 움직임들이, 어떤 밤엔 유독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살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영원하지 않다.

이 두 문장이 동시에 내 안에서 만날 때,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고 차분한 무게가 내려앉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신 밤을 기억한다.

낯선 집안 냄새, 어른들의 울음소리.

겁에 질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없어지는 걸까?'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역설적이게도 이불의 보드라운 감촉, 창밖을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내 거친 숨소리가 더 또렷해졌다.

무서우면서도 신비로운 느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죽음을 외면하는 법을 배운다.

마치 없는 일처럼.

하지만 그 외면이 습관이 되면, 삶 또한 무색무취하게 흐려진다.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세상이 정해준 궤도를 따라 미끄러지듯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서로를 삼켜버리고, 나는 존재하지만 정작 '나로서'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이어진다.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 그 흐릿한 흐름이 멈춘다.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그날 처음으로 하늘이 눈부시게 보였다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처음으로 가슴에 와닿았다고, 매일 마시던 커피가 그날따라 유독 뜨겁고 향기로웠다고.

죽음은 '다음에 또'라는 막연한 미련을 지우고, '지금 단 한 번'이라는 강렬한 새김을 남긴다.

그제야 비로소 이 순간이 유일해지고, 내 삶도 진짜 무게를 얻는다.


강은 둑이 있어야 흐를 수 있다.

죽음은 삶이라는 강물의 둑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엔 선율이 있을 수 없다.

마지막 음이 닫히는 순간, 비로소 앞선 모든 음이 의미를 갖고 아름다운 곡으로 완성된다.


스피노자는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에 대해 가장 적게 생각한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죽음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정면으로 바라본 뒤에야 올 수 있는 삶에 대한 온전한 집중이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과, 똑바로 응시한 뒤 고개를 돌리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후자가 진짜 삶을 선택하는 태도다.


시시포스는 바위가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무거운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린다.

카뮈는 그 순간 시시포스가 행복했을 것이라고 했다.

죽음을 뻔히 알면서도 오늘이라는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내리는 가장 의식적인 선택이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는 평생 남들이 말하는 '올바른' 삶을 살았다고 믿었지만, 막상 죽음 앞에서는 공포에 떨며 무너졌다.

자신의 삶이 껍데기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 속에서.

그런 그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건 게라심뿐이었다.

그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반의 곁을 지켰다.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두었기에, 그는 '지금, 여기'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죽음을 사유하는 건, 내 삶의 가장자리 낭떠러지에 서보는 일이다.

그 끝에 서봐야만 비로소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얼마나 위태롭고 아름다운 곳에 있는지 보인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오늘이 내게 허락된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이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까?'

'방금 했던 그 말을 뱉었을까?'


이 질문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초점을 선명하게 맞춰주는 렌즈다.

죽음을 아주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지루했던 현재가 갑자기 생생하게 타오를 때, 나는 그것을 내가 '진짜로 살아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이제 열세 살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 밤의 떨림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고.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내 존재의 무게를 온몸의 감각으로 느껴본 경이로운 순간이었다고.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다.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안쪽의 필수 조건이다.

불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언젠가 꺼지기 때문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은 더 이상 빛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우리의 삶 역시 그렇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아니, 사라질 것이기에 지금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


죽음을 생각하는 나는 비로소 더 살아 있는가.

그렇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내게 주어진 삶 또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온몸으로 마주한 삶만이, 비로소 '진짜로 살아낸' 삶이다."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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