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언제나 금이 간 자리에서 들어온다
비는 늘 기억보다 먼저 내리는 것 같다.
그날도 그랬다.
봄비가 창을 두드리던 저녁, 오래된 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내용은 정말 사소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젖은 아스팔트를 밟으며 나는 묘하게 낯선 감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날 선 말이, 내 안 어딘가에 이름 붙이지 못한 채 숨겨두었던 취약한 자리를 정통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밤, 나는 천장을 오래 바라보며 뒤척였다.
어둠 속에서 질문 하나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대체 타인이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눈동자를 거울삼아 나를 확인하며 자란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지, 아니면 거슬리는 존재인지.
살면서 그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오해를 받았을 때 미칠 듯이 억울한 것도, 내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텅 빈 것처럼 공허한 것도, 결국 누군가 나를 봐주어야만 내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 앞에서 비로소 내 삶의 윤곽을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타인은 분명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거울은 때로 우리를 가둔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고 늘 내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관계는 따뜻하다.
하지만 그건 온실 속의 온기 같다.
계절의 변화도, 매서운 바람도, 부딪히는 마찰도 없다.
그 안에 머물 수는 있지만, 단 한 발짝도 밖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내 입맛에 딱 맞는, 나를 완벽하게 비춰주는 타인만 곁에 두는 건 결국 사방이 내 얼굴로 도배된 거울방에 갇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빛나지만, 지독하게 고독한 곳이다.
반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관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내 생각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는 타인의 낯선 표정,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말들.
그것들은 나의 굳건하고 닫힌 세계에 쩍 하고 금을 낸다.
솔직히 그 균열은 아프다.
내가 굳게 믿고 있던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이니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방어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며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도망치는 대신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균열은 비로소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단단했던 벽이 깨지고 틈이 벌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그 비 오던 저녁으로 돌아가 본다.
친구의 말이 그토록 나를 뒤흔들었던 건, 그가 완전히 틀려서가 아니라 뼈아프게도 어느 정도 맞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를 쓰고 외면해 온 나의 지질함, 나의 어두운 한 면을 그는 지나치지 않고 짚어냈다.
그날 밤 그는 나를 비추는 매끄러운 거울이 아니라, 나를 깨뜨리는 아픈 균열이었다.
타인은 나에게 거울일까, 아니면 균열일까.
나는 오랫동안 이 피곤한 질문을 덮어두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질문은 애초에 답을 내리고 닫아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타인은 '금이 간 거울'이다.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아서, 내 모습을 때로는 일그러뜨리고 때로는 날카롭게 베어내면서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그 불완전하고 거친 파편 앞에서, 나는 혼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었던 나의 밑바닥과 대면한다.
자아는 혼자 방 안에 앉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부딪히고 긁히는 마찰 속에서 간신히 빚어지는 것이었다.
봄비는 지금도 내린다.
나는 여전히 그 친구와 연락하며 지낸다.
우리는 굳이 그날의 말다툼을 다시 꺼내며 사과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어떤 균열은 섣불리 말로 꿰매려 할수록 더 덧나기도 하니까.
우리는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말없이 각자의 찻잔만 만지작거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날 그가 내 안의 벽에 내리친 작은 균열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 어떤 빛을 들여보냈는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거울은 내가 여기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균열은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그 금이 간 거울 앞에 선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