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성: 공부와 독서
요즈음 나는 조용히 바쁘다. 26년도의 첫 달인 1월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을 해보니,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잔잔하지만 물 밑에서 바쁘다. 일상은 크게 2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는 자격증 공부이다.
나는 정책을 연구하는 대학원에 진학할 목표를 세웠는데, 사실 일반대학원 준비라는 게 연구계획서와 자소서 작성을 제외하고는 어떤 양질의 활동을 해두면 좋을지 고민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연구생활에 도움이 될 통계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학부시절 약간의 의도를 곁들여서 전공수업으로 통계 세 과목을 수강했었다. 덕분에 기초통계이론과 통계프로그램으로 간단한 산출물을 만드는 것에는 익숙하다. 당시에 수강할 때는 과연 이 지식을 써먹을 때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특히나 통계학과 전공수업을 들었을 때는 아이패드 고장으로 강의필기가 날아가는 수많은 억까를 견디는 등의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나는 통계를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무의미한 것은 없는 법이다. 아무튼, 자격증 공부를 위해 독학 후기들을 찾아보았고, 다른 시험에 비해 비교적 품을 적게 들일 수 있는 시험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고질병이 등장한다. 바로 완벽주의와 불안증이다. 이 두 개는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완벽주의가 불안에서 기인하고 불안은 완벽주의에서 비롯되는 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나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결정의 기저에는 어학자격증 공부라는 또 하나의 숙원사업이 있기 때문에 병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기초 이론과 필요한 부분의 강의를 들으며 말 그대로 성실하게 준비를 했다. 단기기억이라는 효율성을 위해 시험 일주일 전에 복기할 부분을 남겨두고서 공부를 멈춘 상태다.
통계 자격증 공부를 멈추고 바로 영어공부에 들어갔다.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시험이 따로 있어서 그걸 준비하고 있다. 영어는 말하자면 애증의 존재이다. 외국어 고등학교 영어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이 과목 때문에 울고 웃었고, 솔직히 운 적이 더 많았다. 언어에 자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넘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나의 상상만큼, 나의 욕심만큼 내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마주하는 것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훈련은 보통 반복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무뎌지고, 점점 나를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노력은 하되 결국 넘지 못하는 선이 있다면 우두커니 그곳에 서있는 연습을 해왔다. 특히나 어학자격시험을 취득할 때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시험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짜증 내고,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에 영양가 없는 한탄을 하고는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 준비하는 시험을 연습 삼아 본 적이 있었다. 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보았는데, 가장 친했던 한 친구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것을 보고 태연한 척했지만,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내 속마음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애써 외면했던 시험이기도 했다. 이렇게 결국 대면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한 채로 말이다.
어찌 되었건 내가 넘어야 하는 지점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루하루 나의 부족한 부분에 한숨짓고, 의외의 선전에 잠깐 기뻐하면서.
두 번째는 독서 챌린지다. 1월 2일부터 시작한 브런치 독서 챌린지에 매일매일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데,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한 장이라도 읽어서 독서라는 하루 일과를 해내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중이다. 벌써 절반이 지났고, 그동안 완독한 책도 생겼다.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되짚어보면, 내가 집착적으로 독서에 취미를 둔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물한 살 때부터 책을 읽고 독서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무언가를 끝없이 탐구하는 맛을 들인 시점이 그때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대한민국 교육과정의 특성상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지적 탐구랄 것이 별로 없다. 생활기록부에 적힐 지식을 인위적으로 조각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는 많이 희석된다. 나 역시도 스무 살이 되어서야 내가 진짜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유독 열과 성을 다하고자 하는 분야는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찾았다. 그런 나에게 가장 좋은 파트너이자 비서는 책이었고, 그렇게 내 생활의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내 세계관에 책이 빠지면 서운할 정도니까. 다시 돌아와서, 2026년도는 많은 책을 읽기보다 꾸준히 독서를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챌린지를 하면서 습관을 들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글쎄 사실 강제성이 사라지면 하루 정도는 띵겨먹는 날들도 생길 것 같다.
몇 주 전에 쓴 글에서 다른 사람의 투철했던 고민을 한입에 쓱싹하는 달콤한 도둑질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책 역시 다르지 않다. 매주 브런치와 매거진 연재글을 쓰다 보니 여실히 느낀다. 아무리 나의 깨달음과 경험에 대해 쓰는 거라지만,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진대, 하물며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어떠할까. 때로는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묶어서, 혹은 사회실험으로부터 통찰을 이끌어내서, 소설이라면 수만 번의 퇴고를 거쳐서 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하고 싶었던 말은 책 읽기 역시 달콤한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훔쳐 먹어서 잘 소화시켜 보자는 다짐을 한다.
분명히 지난주에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친구들 마저 나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고백했었다. 민망스럽게도 단 일주일 만에 달라졌다. 이상하리만치 괜찮아져서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의 위로와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회복이 빠른 걸까. 아니면 난 좀 이상한 아이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