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을 인정하는 일의 어려움
지난 화요일에 나는 우울감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타인을 미워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정말이지 오락가락하는 내 정신상태에 놀라는 요즘이다. 이 정도로 감정이 널을 뛴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누구를 미워하느냐 하면, 바로 내가 아끼는 내 친구들을 미워했다. 사실 미워한 지 좀 되었는데, 막상 인정하지 못하고 흘려보내왔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전부 한 마리의 경주마처럼 성실하고 치열하게 삶을 꾸려나간다. 어찌 되었건 세상의 잣대에서 보았을 때, 실패를 겪고 스스로 백수가 되려고 선택한 뒤로 나도 모르는 불편한 감정이 마구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왜 열심히 살아서 조금 숨 고르기를 하고 싶은 나를 안달 나게 만드는지, 왜 너희는 항상 다음 스탭이 정해져 있는 건지. 나는 조금 소진되었는데, 너희 때문에 못 쉬잖아. 너희 때문에.'
와우. 아주 바닥을 보는구나. 싶은 생각이 덮쳤다. 당연히 위에서 한 말들은 전부 터무니없는 자격지심과 자기 연민으로 점철된 내 자아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말도 안 되는 거지.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것이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님에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인간관계가 다 박살이 나는 것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나갔다. 따듯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마시면서 무작정 걸었다. 천천히 주위도 둘러보고, 찍고 싶은 풍경도 찍으면서 낮게 읊조려보았다. 나의 감정에 대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악마와 함께 춤을(크리스타 K. 토마슨)>-에 따르면, 이러한 행동을 감정 수양형 성인이 수행하는 '공간 만들기' 전략이라고 한다. 나의 행동을 전문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뭔가 뿌듯(?)하다.)
틀 안에서 규격에 맞는 삶만을 살아오던 내가, 이제 그 틀을 벗어나 또 다른 틀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시차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또 잘 되지 않는 이 끝없는 내적 갈등을 어찌해야 할까. 뜨거운 공을 어찌 다룰지 몰라 이 손 저 손으로 옮기는 것처럼, 나의 뜨거운 감정에 데고 싶지 않아서 안달복달했다. 걸으면서 차분히 내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으니, 감정이 좀 식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헛웃음이 나왔다. 조소는 아니고... 그냥 어이도 없고 별일을 다 겪는다는 생각에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웃고 나니 내가 많이 힘들다는 것을 그냥 이대로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 나 힘들어. 맞아.
글을 쓰면서 가장 좋은 점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마음이 정화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월 중순까지 제출하려고 계획했던 수필공모전을 그날 바로 내버렸다. 글을 휘리릭 써서. 아무래도 수필이라고 함은 내 마음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풀어내는 과정이니, 그날이 딱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거친 문장을 아주 약간만 정제한 상태로 글을 완성한 건 거의 처음이었다.
산책과 수필 쓰기로 나는 또 평화로워졌다. 정말이지 감정이 널을 뛰는 게 맞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좋지 못한 감정들에 때마다 대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대책 있는 백수의 과제인 것이다. 나의 인생에 지독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글대는 좋지 못한 감정들을 말이다. 한 번 해보았으니, 다음에는 놀라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겠지 싶다.
나쁜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내 감정을 무시하지는 말자. 나쁜 마음이 올라오는 것도 그 자체로 나다. 사랑해야지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