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인 척 옆에 있어줘

우정이란

by 감자부침


무한 경쟁의 시대. 옆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 어디까지의 슬픔을 공유해도 되는지 가늠하기 힘든 시대. 사람 하나 믿기 쉽지 않은 요즈음 그럼에도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살만하다고 날숨을 내쉬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논리적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이 화살표를 가진 그것. 그 끝에 서 있는 내가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




지난 금요일에, 이웃사촌이자 나의 소꿉친구와 점심을 함께 했다. '야, 코다리 먹고 싶지 않냐?'라는 나의 충동적인 질문에 '먹으러 가자'라고 답을 주는 우리의 관계 덕에 갑작스레 만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우리와 우리의 어머니들이 예전부터 종종 가던 코다리찜 식당이 있는데, 그곳에 가자는 말이었다. 사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만날 장소와 가야 할 맛집과 카페를 사전에 정해야 한다. 즐겁지만, 때로는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코다리를 먹는 20대 청년 여성들은 잘 없다. 여간 입맛이 잘 맞지 않고는 어려운 메뉴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 소중하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보통 예전에 했던 말이다. 늘 하던 고민, 오래 봐왔기 때문에 알고 있는 서로의 시시콜콜한 사연들,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잡다한 불만과 욕망, 도파민이 잔뜩 나오는 수위를 넘나드는 비밀이야기까지. 만날 때마다 대동소이한 소재로 떠드는 데도 불구하고 매번 폭소를 터뜨리는 일이 생긴다. 각오를 하고 만난 것도 아니고, 개그맨 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유머를 가진 우리가 아님에도 서로에게는 그런 존재가 된다.


언젠가 갑자기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넓은 세상 어딘가에 잘 살고 있고, 연락만 끊긴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져 버린다면. 너무너무 아끼는 무엇이 생기면 그걸 잃는 상상을 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어김없이 나의 우정도 이 상상의 시험대에 오른다.

그리 오래 걸릴 상상이 아니었다. 내 삶의 조각이 없어지는 일이다. 그 상실감을 우울과 슬픔이라는 감정단어로 다 바꿔 말할 수 있을까. 감히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시간을 품고 있는 하나의 우주를 내가 떠나보낼 수 있을까. 스쳐 지나가듯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이제는 볼 때가 되었는데 한 번 만나자고 해야겠다는 그 모든 생각이 무용해지는 나의 상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이가 많이 들고 서로의 곁에 더 많은 사람이 생기고, 어쩌면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리는 그때가 온다 해도 나는 영원히 이 우정의 한 자락을 잡고 미련을 두겠구나. 잘해야겠다 다짐한다.


백수생활은 생각보다는 따분하지 않다. 그러나 생각보다 외롭다.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쌓이다 보니, 그걸 숨어서 마주하는 스스로에게도 염증이 느껴지곤 한다. 두려움을 지키는 것인지 나를 지키는 것인지 모를 방어기제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우정이 없었다면,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다는 어느 노래가사와 같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한다. 그보다 네가 없었다면 나를 잃지 않고 버티고 있을까 싶다.


친구는 서로 닮은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다른지 그 끝까지 기꺼이 걸어가 보고 싶은 사람이다. 나와 나의 소꿉친구는 성격도, 외모도, 옷 입는 스타일도, 형제관계도, 이상형도, 5년 뒤를 그리는 꿈도, 별자리도, 취미도 전부 다르다. 또 무엇이 다를까. 어디까지 다를 수 있을까. 결핍과 미성숙을 보듬는, 다가올 리 없는 완숙을 요구하지 않는 이것이 바로 우정이다. 우리도 모르는 믿음이 바로 이 우정의 열쇠겠지.





너로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이 매우 오래간만이다. 어째서인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를 않아. 실수인 척 계속 옆에 있어주렴.









image.png 글 쓰면서 들으려고 우정플리를 무작위로 틀었는데, 첫 곡부터 심장을 때렸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7화혼자 떠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