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들을 보며 항상 했던 말
"저 아이가 울부짖는 고통이 보이시지 않나요?"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박사님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보기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버릇없는 금쪽이만 있을 뿐인데 도대체 어떤 고통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건 엄마가 잘못한 거야. 저러면 안 되지. 진짜 힘들겠다."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그토록 무지한- 내가 내뱉어버린 말이다.
내 옆에는 완벽한 아이가 있다. 시간 약속 잘 지키고, 단 한 번도 학교나 학원에 지각하지 않는 아이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은 당연히 끝냈고, 설명을 하면 언제나 납득해 주는 착하디 착한 딸이다. 안심이다. 금쪽이가 아니어서.
균열은 있었다. 지금 와 돌아보면. 눈빛. 쉽게 무시할 수 있다. 아이의 눈빛은 바로 바뀌었으니까. 나는 말로 아이를 바꿀 수 있는 유능한 엄마다. 금쪽이 부모님들, 많이 힘드시겠네. 다행이다. 금쪽이가 아니어서.
그날. 아이가 짐승의 울음을 토해낸 날. 도망치고 싶었다. 고통을 울부짖는 아이의 울음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부끄럽다. 난, 유능한 엄만데? 이 아이는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닌데? 두려웠다.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면 어쩌지?
나는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내 안에서 온갖 것들이 돌아다녔다. 원망, 억울함, 슬픔, 막막함, 무기력함...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럴수록 숨고 싶었다. 드러내선 안돼. 내 인생에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은 안될 일이야.
오랜 시간 누구에게도 말을 못 했다. 아마도 난 받아들일 준비도 용기도 없었나 보다. 침묵은 어쩌면 자발적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얼어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나를 만나고서 이다. 침묵 속에서 만난 어린 나. 어린 나는 우리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을 허락해주고 나니 움직일 수 있었다. 그토록 가면 뒤에 숨어 고통을 받고 있던 어린 나는, 우리 아이였다.
그 뒤 나는 아이를 나의 우아한 침묵 속에 만들어진 무대에 초대해 마음껏 춤을 추게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안전한 경계이다. 단단하고 담대하지만 부딪혀도 다치지 않는 그 경계를 가진 자유로운 무대이다. 난, 아이에게 이런 무대가 되기로 했다.
그날 이후, 우린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변화를 기록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아이는 여전히 가면 뒤로 숨고 싶어 한다. 나는 그 가면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겪어 내기로 했다. 이 과정 속에 우리가 어떤 공연을 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