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터널 속에 있었지.
번쩍. 어두운 연수원에서 무음으로 된 나의 핸드폰이 홀로 빛을 토해내고 있다. "My Love OOO"
잠시 화면을 바라본다. 내 손은 무엇인가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듯했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수많은 장면을 재생한다. 한결같이 내 손을 묶어 핸드폰에 가 닿지 못하게 하는 밧줄 같은 시나리오뿐이다. 그것은 불길함을 감지한 엄마의 본능이었다.
손에 묶인 수많은 밧줄을 겨우 풀어내고 발걸음을 밖으로 향한다. 나의 눈은 분주하게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을 찾아 헤맸다.
'이 전화는 받아야 한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요. 무기력하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여러모로 무섭고 가슴 아린 말이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외치고 있다.
"출장이고 뭐고 당장 짐 챙겨서 집으로 가!! 아이 옆에 있어!! 애가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가서 안아주라고!! 모든 것을 다 받아내라고!!"
그곳에 내 말을 무시하는 내가 있다. 어금니를 세게 물었는지 턱이 부르르 떨린다.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다. 출장이라는 곳에 나의 체면은 여전히 중요한지 으르렁거리듯 쇠를 긁는 낮은 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얼굴은 굳어있지만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피고, 입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요새 왜 그러는 거야?"
그 장면으로 가는 길.. 마치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 듯하다. 너무 아파서 다음 발걸음을 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장면에서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른다. 아이가 이렇게 아팠겠지. 한껏 일그러진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고 흔드는 것 같다. 눈가가 뜨거워진다. 숨이 막히는 듯하다. 너무... 아프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웅크리고 이불을 꼭 쥐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견디느라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견디다가 터질 듯한 아픔에 핸드폰을 들었겠지. 옆에 없는 엄마와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수화기 목소리뿐이었을 테니까.
그저 엄마가 "괜찮니?", "많이 힘들구나~" 한마디만 해주면 그 동아줄을 꼭 움켜쥐고 불하나 켜지지 않은 암흑 같은 터널을 힘내서 빠져나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 알아주기만 해도 난 걸어 나갈 수 있어요. 엄마 내가 힘드니 알아주세요. 위로가 필요해요."
귓가에서 아이의 절규가 울리는 듯하다.
"요새 네가 한 게 뭐야? 숙제도 안 하고.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잖아!! 조금씩만 하라고. 그리고 엄마가 방 구조 바꾸는 건 안된다고 했잖아. 엄마 출장 중인데 왜 엄마를 방해해. 그리고 너, 저번에 엄마가 그래서 책상을 바꿔준 거 아냐! 그건 왜 생각도 안 해!!"
따스한 목소리는커녕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만 아이의 모든 세포에 날아 꽂히고 있었다. 방에서 혼자 아이는 그렇게 숨죽여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엄만 다시 연수 들으러 갈 거고, 너는 할 일 다 해놔! 알았어?"
끝까지 잔인하다. 다른 표현을 못 찾겠다. 아이의 썩어 문드러진 마음은 냄새나는 흉물이었다. 존재를 부정했고 없애버려야 할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치워버려야 할 것. 아이의 상처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도려내려 했다.
"네....."
이후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과연 가늠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여유롭게 생각이나 할 시간이 없다. 당장 몸을 움직여 아이를 구하러 가야겠다.
그곳으로 가는 나의 발은 이미 피투성이다. 내가 뿌려놓은 그 모든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을 밟고 가고 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그 길은 나의 아이를 구조할 외길이기 때문이다. 고통에 신음하는 아이를 과거의 나로부터 우주보다 더 멀리 떨어뜨리고 싶다. 아이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신음소리조차 못 냈던 그 아이가 지금은 모진 말이라도 토해낸다는 사실에 가끔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안도감은 아마도 모진 말속에 아이는 진심을 숨겨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모진 말이라는 가시 돋친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 진심을 알아낼 수 있다면. 아이가 모진 말을 토해내면 나는 그 속에 있는 아이의 마음을 내 품에 모아둘 것이다.
다 내보내렴. 그 순간, 너는 터널밖에 있을 거야. 그곳에서 너를 환하게 맞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