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남편도 모르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남몰래 즐거움과 홀가분한 기분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건 바로 ‘길티플레져‘다.
그렇다면 나의 비밀스럽고 즐거운 길티플레져는 뭘까. 갑자기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곧바로 세 가지나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따뜻한 커피를 허리가 둥글고 뚱뚱한 빨간 컵에 따라먹기다. 이 컵은 몇 년 전 독일 크리스마켓에 갔을 때 뱅쇼를 담아줬던 컵이다. 컵 값을 내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물 건너 가져왔다. 이 귀여운 컵에 내린 커피를 담아먹으면 커피는 이상하리만치 천천히 식는다. 그리고 엄청 많이 담길 것 같이 보이는데 겨우 200미리 정도가 최대치다. 왠지 쿨한 척 하지만 속은 겁이 많은 빨간 아기돼지가 상상이 되어 너무 귀엽다.
나는 슬쩍 남편의 커피는 다른 적당한 컵에 담고 나의 커피는 무조건 이 빨갛고 통통한 컵에 담는다. 하하. 남편은 모를 것이다. 이 독일에서 건너온 귀여운 빨간 컵이 훨씬 더 따뜻하다는 것을 말이다.
두 번째는 제일 폭닥하고 부드러운 수건은 내가 쓰기다. 수건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폭닥함의 정도는 굉장히 차이 난다. 아이들과 내가 쓸 세 개의 수건을 장에서 무심히 꺼낸다. 그중 제일 부드럽고 수명이 많이 남아있는 수건은 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보관해 놓는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것들을 먼저 나눠주었던 것 같다. 수건 정도는 제일 포근한 것을 내가 써도 괜찮겠지. 그래도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고 다 큰 첫째가 은근 눈치를 챘다! 아쉽게도 수건 길티플레져는 오래 못 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침밥 두 번 먹기다. 아침에 정신없이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며 먹은 아침은 뭔가 배는 든든해도 안 먹은 것(?) 같다.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삼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등원 준비 시간의 아침밥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 식사는 무효로 하자고 자꾸 속삭인다. 나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둘째까지 등원을 완료하고 그 길로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스타벅스의 모닝세트를 시켜 먹는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닌데, 따뜻한 커피와 바로 데워 먹는 오믈렛 샌드위치는 그날의 첫끼처럼 아주 꿀맛이다.
나의 이 세 가지 길티플레져는 아마도 가족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간 컵만 고집하는 내 모습에 뒤에서 은근히 웃고 있을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의 폭닥한 수건 사랑을 다 큰 딸은 모른 척해줄 수도 있다. 아침밥 두 끼는, 내 안의 내가 모른 척해주고 있다.
소소한 길티플레져 찾기가 재밌다. 평화로운 주말이 즐거운 생각 덕분에 풍요로워진 듯하다. 혹시 남편도 아이들도 그들만의 길티플레져가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