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밖을 조금 내다본다
나는 긴장을 잘하는 사람이다. 허허실실 웃는 것도 좋아하고 철없이 구는 것도 내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밤, 혼자 부엌불만 켜고 식탁 의자에 앉아 참아왔던 얕은 숨을 드디어 뱉기도 한다.
‘역시 오늘도 긴장 많이 했었구나. 오늘은 이것으로 끝이야.‘ 나에게 알려준다.
가족들이 오늘도 큰 문제없이 잠이 들었고, 나도 멀쩡했지만 자꾸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잘 돌아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다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마음은 내게 좀 더 무언가를 해보라고 소리 없이 재촉했다.
‘뭘 더 할 수 있는 게 있겠어. 이 정도면 됐지. 얼른 쉬어.’ 또 다른 마음이 나를 다독인다.
모두 머릿속에서만 이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생각들을 정리도 못하고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일어나면 다시 몰려오는 잔잔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새 하루를 시작했다.
사실 아이들 웃음, 남편과의 농담, 쨍한 햇빛과 함께 드는 따뜻한 바람과 같은 일상은 내게 쉽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행복하다고 긴장이 풀리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이러한 증상(?)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갑자기 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너 줄 쓰는 것도 어려웠다. 주제는 떠올랐으나 어떻게 시작해서 언제 글을 끝내야 할지도 잘 몰랐었다.
그저 꼬맹이가 어설프게 엉덩이를 들고 힘들게 걸레질을 하는 것처럼 문장을 썼다. 글쓰기에 대하여 배운 적이 없으니 이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 처음 걸음마를 하는 아기처럼 그냥 뒤뚱뒤뚱 썼다.
내가 봐도 글이 좀 우스꽝스러웠다. 웃음이 피식피식 났다. ‘뭐 이렇게 쓰는 건가 참.’ 다섯 문장 정도로 마무리된 나의 첫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마음에 동그란 창문이 생겼다. 그러고는 너무 차갑지도 너무 따뜻하지도 않은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을수록 창은 조금씩 더 열렸다.
‘살겠구나.‘
마음은 차분해지고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 내 글을 보는 사람은 오직 나와 남편, 그리고 친구 두세 명이 전부였다. 친구들과 남편이 잠깐 멈춰 읽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들이 나를 단 10초라도 생각해 주겠다고 생각하니 설레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써오기 시작해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금도 쓴다. 그때와 지금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 쓰고 나서 ‘이렇게 쓰는 건가 참. 그래도 오늘도 살겠다.’를 똑같이 속으로 반복한다.
대신에 동그란 창문 밖으로 이제는 나무도 보이고 하늘도 보인다. 귀여운 내 아이들도 뛰어논다. 나는 스스로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키고 청소도 좀 한다.
긴장을 잘하는 타고난 내 성향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쓰기를 통해 마음속 창문도 만들었다. 그곳으로 숨을 쉬며 바깥을 구경하니 조금씩 안심이 된다.
들리지 않는 두근거림이 좀 잦아들었다. 숨도 시원해졌다. 여전히 부엌불을 켜고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 나지만 그 숨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다.
쓰기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킨다. 거참 신기하다. 나를 안심시키고 들여다봐주는 창문이 고맙다.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