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 추구자
새해맞이를 위해 소극적인 대청소를 했다. 소극적인 대청소란 어느 날은 안방, 어느 날은 첫째 아이 방, 이렇게 공간마다 나누어 물건들을 싹-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나만의 개인적이고도 소극적인 방법이다.)
안방 안 우리 부부의 물건들은 사실 안쓰러울 정도로 몇 가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물건은 방바닥과 서랍에 놀라울 정도로 차곡차곡 많이도 쌓여있다. 아마도 온갖 장난감들과 만들기들 덕분이리라. 더불어 얕은 먼지들도 차곡차곡 예쁘게도(?) 안착되어 있다.
아이들 물건은 참 순식간에 불어난다. 그리고 크기도 다양하다. 한번 떨어뜨려 어디로 굴러가버리면 절대 못 찾을 것 같은 작은 구슬부터, 둘째 아이 앉은키만 한 로봇까지 신비로운 잡화점이 따로 없다.
이번에는 많이 버리리라! 마음을 먹고 아이들 방에 입장한다. 이제는 버릴 때도 되었지. 벌써 3년 전에 일본여행 갔을 때 가챠샵에서 뽑았던 작은 키링이다. 스티커도 군데군데 찢어져 어떤 캐릭터의 키링인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아-그런데 이 키링은 아주 고생해서 뽑은 키링이다. 그때 나는 촌스럽게도 여행 가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오사카의 한 약국에서 겨우 산 감기약을 먹었다. 아프다고 숙소에서 쉴 수는 없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도시에서 아마도 가장 큰 가챠샵에 갔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씩 뽑아도 된다는 말에 신이 난 아이들은 열심히 둘러보며 신중히 골랐다. 요 군데군데 스티커가 뜯어진 키링은 바로 그때 만난 키링이다.
아이들의 서랍을 열어보니 몇 년 전부터 모은 아이들의 작품들이 들어있다.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것들은 아이 얼굴 사진도 붙어있다. 음, 사진만 떼고 그림만 좀 버릴까. 벌써 3년 전 작품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4살 아이가 참 색을 잘 썼다. 나중에 어른되면 왠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이건 간직하자, 저건 잠시 보류다. 아이가 찾을 수도 있어.‘
버리는 건지 모아서 다시 넣어두는 건지 알 수 없을 청소는 계속된다. 방에 들어간 지 벌써 두 시간째다.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눈을 피해 겨우 버릴 것을 찾아 불투명한 쇼핑백에 담아 두었다. 몰래 쇼핑백을 대문 밖에 빼놓는다.
멀끔해진 방을 기대하며 다시 들어간다. 하지만 적잖이 당황스럽다. 내가 봐도 방은 거의 똑같다. 자세히 보면, 아주 자세히 보면 조금 깨끗해졌다.
방바닥도 닦고 환기도 시켰다. 나는 허리를 두드리며 방을 나온다. 몸은 분명 노동으로 힘든데 방의 상태는 여전히 애매하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나의 대청소 자랑에 방을 둘러보고는 묘한 표정과 함께 말을 아낀다.
“음, 아 청소했구나. 그래, 고생했겠다. 잘했어. 좀 더 버리지 그랬어.” 남편은 적당한 단어를 꺼내려고 노력한다. 그 모습이 그래도 고마워서 애매한 남편의 칭찬을 받아들인다.
하지민 나는 정말 미니멀리스트가 맞다. 안방을 보면 그렇다. 필요한 것은 정말 딱 한 개씩 있다. 물건이 쌓이기 시작하면 물건들이 내 몸을 붙잡고 나를 둔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 물건은 다르다. 아이들 물건이 없어지면 반대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들에게 준 사랑이 없어지는 것 같다. 고생하며 으쌰으쌰 만든 추억들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무엇이 없어지고 어디에 빈 공간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원한 공간이 생겨야 또 따스한 추억들이 쌓일 텐데. 여름옷 꺼내기 전에 또 정리하면 된다는 유치한 변명으로 상반기 대청소는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아이들 책꽂이 한 칸씩은 빈 상태로 정리해 두었다. 그 빈 공간을 바라보며 만족한다. 눈이 머리를 속이는 것 같아 웃기다.
‘하반기에는 정말 많이 정리해 보자.‘ 아이 한정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또 나와 자신 없는 약속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