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요한 21,18
젊었을 때도
스스로 허리띠를 맨 적도 없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다닌 적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적어도 내 팔다리는
내 마음대로 휘저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지금까지 떠도는 것이 아닐지
이제 내 팔이 내 팔이 아닌 듯하고
내 다리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저 현란한 석양 때문일까
걸을 만큼 걸어서일까
카우보이의 로프에 걸려
저 허름한 초가집으로 끌려가야 할지도
그곳에서 방랑의 낭만을 마칠지도
아니지
겨울잠을 달콤한 꿈으로 보내
고양이 발톱 같은 겨울을
견디어온 아가씨
아직 때 이른 봄소식에도
춤을 추며
白馬탄 王子가
허리띠를 매어주기를 기다리는
봄처女처럼
가슴이 설렜더니
내가 꿈도 꾸지 않았던
전혀 원하지 않았던
사막으로 끌려온 나
내 허리를 묶고 있는
비단 허리띠
그 띠를 잡고 있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손
그 손 주人의 찬란한 미소
이곳은 바로
봄처女가 겨우내
꿈꾸던 그곳
이제야 방랑을 멈추고
모래밭 깊이 파고
겨자씨 하나 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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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모양이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깊은 뜻이 있는 듯이 방랑을 시작했지만, 결국 찾는 것이 여자였다면, 시인 자신도 몹시 실망하겠지만,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에덴 동상의 설화에서 보듯이, 여자와 남자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면, 시인은 실망이 아니라 진리를 찾았다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방랑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 끝은 여자의 손일 것이라는 바람이 봄처녀라는 신기루를 만들어 냈다. 시인의 생일 선물이라고 해석하면 사막에서도 겨자씨는 나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은 여자가 종착역이라는 진리를 인정하기 싫어 방랑을 맘추지 않는다. 어디까지 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시인의 제자리가 어딘지는 시인만이 알고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