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다시 만난 어린 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자주 과거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울 때,
서운하다고 말할 때,
말없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 감정의 정체는
아이를 향한 걱정이기도 했고,
그 시절의 나를 향한
뒤늦은 슬픔이기도 했다.
어려서 한 번도 감정의 수용을
받아본 적이 없던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냉정하고 차가운 엄마의 모습이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보이는 듯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 해졌고
아이들에게 더 할 수 없는
미안함이 올라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전히 어려웠기에
지금 당장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바로 아이들에게
변화된 내 모습을 보여주거나
바로 따뜻한 엄마가 될 순 없었다.
사람은 그렇게 로봇에게
입력시켜 바뀌듯이
한 번에 수정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던 거다.
지금의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물으며
감정을 읽어 보려 노력한다.
“왜 그랬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한 거야?”
“지금 어떤 기분이야?”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앞서 눌러 놓은 미안함과 함께
누군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물어준 적이 있었을까?
한 사람이 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고
받아 줄 수 있는 따뜻한 엄마가
될 수 있긴 했던 걸까?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를 이 아이를 통해
다시 안아줌으로 나를 회복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아이들이 울음을 멈추고
내 품에 안겨올 때,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더 울어도 돼. 엄마가 다 들어줄게”
그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면서,
어쩌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처음 건네는 위로였다.
진정한 어른으로
아이의 감정을 수용한다는 마음으로
위로를 전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