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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정말 ‘스스로’ 책을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어른의 손길에 대하여

by 흰 백
아이가 스스로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까?

SNS와 블로그로 책육아 기록을
몇 년째 남겨오다 보니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책을 별로 안 읽는데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해요.”

“굳이 아이 책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오래전부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이 계속 걸렸다.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정말 그럴까.
부모의 개입 없이,
아이가 ‘저절로’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있어 보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늘 몇 가지 공통된 조건이 숨어 있었다.



‘스스로 좋아하는 아이’처럼 보이는 경우들

겉으로 보면
아이는 부모의 독서 습관과 상관없이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면

대개 이런 배경이 함께 따라온다.


아주 어릴 때,
매일같이 책을 읽어주던 시기가 있었거나

부모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집 안에 늘 책이 가까이 있었거나

유치원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강한 독서 경험을 했거나

부모가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을 존중하는 말과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거나


즉, 아이가 혼자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 길을 깔아두었던 경우다.


아이는 ‘무에서 유’를 만들지 않는다


독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취향이 아니다.

아이는
자주 본 것에 익숙해지고,
반복된 장면에 안심하고,
존중받는 대상에 마음을 연다.


그래서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 뒤에는 늘
환경, 경험, 어른의 태도가 함께 있다.


독서는
혼자 싹트는 식물이 아니라
누군가 물을 준 흔적이 남는
습관에 더 가깝다.


그래서 부모의 독서는 ‘정답’이 아니라 ‘확률’이다

부모가 꼭 매일 책을 읽어야만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매일같이 책을 읽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안다.


아이들은 놀이에 몰입해 있고

엄마는 책을 보고 있을 때,
자기 전 책을 읽는 시간에,
엄마의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부모가 책을 읽는 집은
아이가 책을 좋아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부모가 책을 읽는 집은 아이에게
‘책을 좋아해도 되는 이유’를
매일 조용히 설명하는 집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설득하지 않아도,
강요하지 않아도


그저
부모가 책을 읽고 있는 장면 하나가
아이에게는 가장 안전한 신호가 된다.


“이건 중요한 거야.”
“이건 어른도 하는 일이야.”
“이건 오래 곁에 두어도 되는 거야.”


그래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정말 없는 걸까.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라는 말 뒤에는
특히 아이가 커갈수록 더 분명해지는
보이지 않는 어른의 손길이 있다.


결국 독서력은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우연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부모의 독서는
완벽한 습관일 필요가 없다.
아이 앞에서
가끔이라도 진짜로 이루어지는
한 장면이면 충분하다.


그 장면 하나가
아이의 마음속에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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