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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왜 책 앞에서 멀어질까

책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너무 빨리 내린 결론

by 흰 백

아이에게 책을 건넸는데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몸을 비틀 때가 있다. 독서지도사의 아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영아기 때 보던 짧은 글밥의 책과는 달리 한 권의 호흡은 점점 길어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구나.’ 아이의 표정은 점점 굳고, 눈은 자꾸 다른 곳을 향하고, 손끝은 책장을 붙잡지 못한 채 맴돈다.


그 순간, 부모의 마음에는 아주 빠른 결론 하나가 스친다. 우리 아이는 책을 안 좋아하나 봐.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아이는 책을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책 앞에서 불편해지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책이 싫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몸이 먼저 반응한다. 피하고, 미루고, 자리를 떠난다. 그래서 책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곁에는 늘 비슷한 장면이 남아 있다. 읽으라고 재촉받던 기억, “무슨 내용이었어?” 하고 되묻던 순간, 모르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섰던 시간, 끝내 완독 하지 못했던 책. 그 경험들이 쌓이면 아이는 책 자체가 아니라 그때 느꼈던 감정을 피하게 된다.


“왜 책을 안 읽어?”라는 질문이 남기는 것

아이에게 “왜 책을 안 읽어?”라고 물으면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책을 펼칠 때마다 조금 긴장하게 되고, 조금 숨이 막히고, 조금 실패할 것 같아지는 감정. 그 감정 앞에서 아이는 아주 솔직한 선택을 한다. 피하는 것.


책이 싫어진 게 아니라, 편안하지 않았던 시간

아이가 책을 멀리할 때 우리는 종종 아이의 성향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책 앞에서 편안했던 기억이 적다. 책 보다 훨씬 자극적인 미디어가 늘 곁에 있었거나, 책을 읽는 시간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따라왔거나,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책이 없었거나. 그럴 때 책은 어느새 즐거운 물건이 아니라 긴장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나의 실수

두 아이를 키우며 책육아에 깊이 들어갔을 때, 나는 가장 크게 흔들렸다. 아이들이 책을 잘 본다는 이유로 욕심이 생겼다. 조금 더 어려운 책을, 조금 더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첫째가 잘 보던 책을 둘째에게도 그대로 건넸다. ‘언니 책이야’라는 말로, 선택권을 지운 채. 한동안은 책육아에서 한 발 물러나 아이들의 패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 욕심이 앞서 있었다는 걸. 욕심을 내려놓자 장면이 달라졌다. 첫째는 다시 영아들이 보는 보드북을 보아도 말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글자를 스스로 떼기 시작했다. 둘째에게는 ‘언니랑 같이 보자’는 말도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스스로 원하는 책을 고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도서관에서 새 책을 가져오지 않으면 큰일 나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독서는 고치는 일이 아니라, 풀어주는 일

독서는 아이를 교정하는 일이 아니다. 책을 더 읽게 만드는 것도 목표가 아니다. 먼저 필요한 건 책 앞에서 아이의 마음을 조금 풀어주는 일이다. 실패하지 않아도 되는 책,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비교하지 않는 옆자리. 감정이 먼저 풀리면 아이의 행동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다시, 질문을 바꿔본다면

우리 아이는 왜 책을 안 읽을까가 아니라,

우리 아이는 책 앞에서 어떤 기분일까.

이 질문에서 독서는 다시 시작된다.


다음 편 예고

그렇다면 아이에게 맞는 책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 ‘좋은 책’ 말고, ‘지금 이 아이에게 편안한 책’을 찾는 기준에 대해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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