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다시 책으로 데려오는 방법
좋은 책은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아이에게 편안한 책은 다르다. 부모는 종종 묻는다. “어떤 책이 좋아요?” “이 나이에 이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나요?” 하지만 아이에게 책을 건네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지, 아니면 책에서 살짝 멀어지는지. 독서는 ‘권장 목록’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 이 아이의 마음과 호흡에 맞는 책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맞는 책을 고를 때 부모가 가장 많이 착각하는 지점이 난이도다. 조금 어려워야 성장한다고 믿지만, 독서에서 그 ‘조금’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자주 멈춘다면
문장 하나를 이해하는 데 10초 이상 걸린다면
읽는 내내 아이의 표정이 굳어 있다면 그 책은 아직 이 아이의 책이 아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난이도 스스로 읽었다는 성공감이 남는 책이다. 한 단계 아래의 책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읽을 수 있어.” 그 감각이 다음 책으로 가는 힘이 된다.
어제 공룡을 좋아했다고 오늘도 공룡을 좋아할 거라 믿지 말자. 아이의 관심사는 계절처럼 바뀐다. 어느 날은 지도에 빠지고, 어느 날은 배에 꽂히고, 또 어느 날은 인물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그래서 책 선택은 한 번 정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자주 바뀌어도 괜찮은 선택이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관심사를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조용히 열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 남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감정이다. “나 해냈어.” “이건 내가 끝낸 책이야.”
이 감정은 스티커보다 오래가고, 칭찬보다 깊이 남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얇은
그림과 글의 호흡이 좋은 책
페이지 구성이 단순한 책
이런 책들이 좋다.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기억이 아이의 독서 근육을 만든다.
독서는 글만 읽는 능력이 아니다. 그림을 해석하고, 정보를 골라내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힘이다.
그래서 독서에는 정답 형식이 없다. 그림책, 동화책, 정보책, 논픽션, 만화책, 활동책 등. 이 모든 것이 독서다.
형식이 바뀌면 아이의 호흡도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선택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유아기 시절, 도서관에서 첫째가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 앞에 멈춰 섰다. 다섯 살 아이에게 그리스로마신화라니, 그것도 만화책이라니. 솔직히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아이는 아프로디테 그림이 너무 예쁘다며 그 책을 꼭 안고 있었다. 대여해 온 줄거리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고, 글보다 그림을 더 오래 들여다보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명화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거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본 것 같아.”라며. 어린이용 그리스로마신화로, 다시 세계사 이야기로, 관심은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어 갔다. 그때 알았다. 모든 책을 부모가 먼저 선별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아이가 고르고 싶어 하는 책, 보고 싶어 하는 책을 조용히 지켜보다 보면 관심은 스스로 뻗어 나간다.
책이 맞는지 헷갈릴 때는 아이에게서 답을 찾으면 된다.
아이가 스스로 이 책을 고르려 하는가
끝까지 읽는 빈도가 점점 늘고 있는가
모르는 단어 때문에 자주 멈추지 않는가
읽는 동안 표정이 편안한가
읽고 난 뒤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예’가 많을수록 그 책은 지금 이 아이의 책이다.
부모는 좋은 책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아이에게 더 중요한 건 이 책을 고를 때의 감정이다. “이건 네가 골라도 돼.” “끝까지 안 읽어도 괜찮아.” “재미없으면 내려놔도 돼.” 이 말들이 함께할 때 책은 의무가 아니라 아이의 선택이 된다.
아이에게 맞는 책은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은 언젠가 아이를 다시 책으로 데려온다.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고른 책을
어떻게 ‘습관’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
독서 루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