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 ː 無害
나는 미술을 꽤 잘 그렸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대회에 나가면 언제나 상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손만 대면 결과가 나오는 일은 분명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건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둘러싼 관심과 칭찬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란 대개 그런 식으로 자라니까.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개인 교습을 받았다. 2대1 형태의 그룹 과외였다. 입시미술은 처음이었고, 입시미술은 정답이 정해진 그림 그리기였다. 손과 시선은 그 정답을 향해 훈련되었고, 내가 해오던 방식—색과 구도, 감각 같은 것들은 그곳에서 의미를 잃었다. 함께 배우던 형은 이미 오래 준비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그림 옆에 놓인 내 그림은 색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나처럼 그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인정받지 못하자 그림은 빠르게 재미를 잃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그 감각이 더 분명해졌다. 나는 데생을 꽤 잘했다. 배운 적은 없었지만, 보는 것과 옮기는 일, 빛과 음영을 만드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 배운 사람들과의 차이는 명확했고, 나에게 쏠리던 시선은 소리 없이 멀어졌다. 인정이 사라지자 그림도 함께 멀어졌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기타를 배웠다. 이번에도 독학이었다. 밤새 연습했고, 또 연습했다.
음악 동아리에 들어 밴드를 했고, 4학년쯤 되었을 때는 주변에서 내가 제일 잘 친다는 말을 들었다.
따르는 후배도 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정을 받고 나자 기타는 다시 재미가 없어졌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목적이 바뀐 걸까.
결정적인 순간은 새로 들어온 한 후배였다. 기타를 전문적으로 배운 친구였고, 경력은 나보다 짧았지만
실력은 분명히 위였다. 주변의 관심은 빠르게 그쪽으로 옮겨갔다.
나는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다시 나를 드러내려 했지만, 내게 오던 인정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때의 좌절은 기타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감각, 그 자체였다.
사회인이 되어 회사를 다니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늘 인정을 받고 싶어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많은 선택들이 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분명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방식이었다. 어릴 때는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이라는 것에 닿을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된 뒤의 인정에는 다른 것들이 함께 붙어왔다. 정치, 전략, 모략, 음해, 질투와 시기.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방법을 나도 모르게 배워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불쾌했다.
언젠가부터 낭만은 사라지고 모순만 남았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보이고 싶다는 욕구 사이에서 나는 점점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박수 대신 나만의 색을 고른다.
흐릿해졌던 나를 다시 덧칠하며, 조용히 완성해가는 쪽으로.
무해해진다는 건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