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8

제8화. 하윤 구출 작전

by 지그프리드

- 서문 -

따뜻한 커피 향과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얽히는 카페 안단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 등장인물

- 민준(23살) : 명문대를 휴학하고 군 전역 후, 복학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주인공,

눈치는 없지만, 다정한 성격

- 서윤(23살) : 카페 안단테 사장의 딸, 털털하고 까탈스러운 성격. 민준이와 동갑

- 하윤(18살) : 비밀을 간직한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소녀

- 점장 : 카페 안단테 사장의 처남, 카페의 경영을 맡고 있음

- 보안팀장 : 태성그룹 보안팀장

- 이 회장 : 태성그룹 회장, 하윤의 아버지

- 조태오 : 하윤의 약혼남, 여성 편력이 심함, 여자를 보기를 도구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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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하윤 구출 작전


서울 도심 한복판, 태성 그룹 본사의 유리 외벽은 여름 햇살을 받아 서늘할 정도로 번쩍였다.

평소라면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 향에 파묻혀 있었을 민준은, 오늘 생전 처음 맞춘 빳빳한 슈트를 입고 로비에 섰다.


"예약 없으시면 곤란합니다. 돌아가세요."

로비 보안 요원들의 차가운 제지에 민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서류 가방에서 정갈하게 제본된 보고서 한 권을 꺼내 데스크 위에 탁 내려놓았다.


"이건 단순한 제안서가 아닙니다. 태성 그룹 이 회장님이 성진 물산과 맺으려는 파트너십이 왜 시한폭탄인지를 증명하는 보고서입니다. 10분 안에 비서실에 전달되지 않으면, 이 내용은 내일 아침 모든 언론사에 배포될 겁니다.

그리고, 보안팀장님께 제 이름을 말씀하시면 들여보내라고 하실 겁니다.

확인해 보세요."


민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명문대 수재였던 시절의 그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되살아난 듯했다.

5분 뒤, 거짓말처럼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민준은 최상층 회장실로 안내되었다.


육중한 책상 너머, 태성 그룹의 절대 권력자 이 회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민준을 훑어보았다.


"내 딸을 꼬드겨 가출하게 만든 그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라지? 자네 배짱 하나는 좋군. 죽고 싶어서 제 발로 들어온 건가?"

"죽으러 온 게 아니라, 회장님을 살리러 왔습니다."


민준은 침착하게 이 회장의 책상 위에 조태오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들과 마약 의혹 조사서를 펼쳤다.


"이게 성진 물산의 후계자, 조태오의 실체입니다. 회장님은 자금 수혈을 위해 딸을 팔려하시지만,

조태오가 터뜨릴 이 스캔들은 태성 그룹의 주가를 반토막 내고 기업 이미지를 회복 불능으로 만들 겁니다.

딸을 지키는 게 아니라, 기업을 망치는 선택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 회장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사진 속 조태오의 추악한 모습은 그도 예상치 못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냉혹한 경영자였다.


"이까짓 스캔들, 돈으로 덮으면 그만이야. 성진의 자금력이 우리에겐 더 급해."

"덮을 수 없는 수준이라면요? 제가 수집한 증거들은 이미 해외 수사 기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


민준은 태성 그룹의 재무 구조를 분석한 도표를 내밀었다.


"성진 물산의 자금 없이도 태성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산 유동화 방안입니다. 제가 분석한 바로는 태성의 계열사 중 일부 매각과 채권 발행만으로도 조태오라는 '오물'을 묻히지 않고 살아날 길이 있습니다. 하윤 씨를 지옥으로 보내지 않고도 말입니다."


이 회장은 한참 동안 민준이 가져온 자료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 안에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민준을 보았다.


"자네... 한국대 경영학과 과탑이었다지? 왜 이런 재능을 썩히고 카페에서 우유 거품이나 만들고 있었나?"

"그 우유 거품을 만들며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회장님이 잃어버리신 그 온기 말입니다."


민준의 당당한 대답에 이 회장은 허탈한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때, 회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조태오가 들이닥쳤습니다.

그는 민준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습니다.


"이 새끼 뭐야? 회장님, 이 아르바이트생 놈이 여기 왜 있는 겁니까!"


조태오가 민준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민준은 가볍게 그의 손목을 쳐냈다.

그리고 이 회장을 향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조태오 씨, 당신이 클럽에서 했던 짓들... 하윤 씨 귀에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을 겁니다. 회장님, 제 제안을 검토하실 시간은 오늘 밤까지입니다."


민준은 조태오를 쓰레기 보듯 차갑게 훑어보고는 회장실을 걸어 나왔다.

등 뒤에서 조태오의 고함과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민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도망치는 패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하윤을 가두고 있는 성벽을 허물 준비를 마친 전사였다.


며칠 후,

이 회장은 민준이 내민 제안서를 책상 위에 툭 던지며, 민준에게 제안을 건넸다.


"자네가 가져온 이 자산 유동화 방안,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하지만 시장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지. 특히나 태성 그룹처럼 위기설이 도는 곳은 더더욱."


이 회장은 만년필로 제안서의 핵심 수치인 '비주력 계열사 매각을 통한 3,000억 원 조달'이라는 문구에 동그라미를 쳤다.


"일주일 주지. 조태오와 성진 물산의 돈을 거절해도 태성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시장의 '확약서'로 증명해 봐. 만약 실패하면 자네는 하윤이를 영영 못 보는 건 물론이고, 영업 방해와 기밀 유출로 인생 전체가 끝날 줄 알아."


민준은 곧바로 카페 '안단테'의 창고로 돌아왔다. 말이 일주일이지, 대기업의 투자 확약서를 받아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민준은 명문대 시절 인맥을 총동원했다.


"형, 나 민준이야. 부탁이 있어. 성진 물산 조태오 리스크 자료랑 태성 유통 매각 건 제안서 보낼 테니까 검토 좀 해줘."


서윤은 민준의 옆에서 밤새도록 자료를 복사하고 커피를 날랐다. 민준은 24시간 내내 노트북 앞에 앉아 엑셀 시트와 실시간 경제 뉴스를 분석했다.

카페 안단테는 이제 향기로운 휴식처가 아니라, 한 남자의 인생과 한 소녀의 자유가 걸린 긴박한 '워룸(War Room)'**이 되어가고 있었다.


민준의 움직임을 눈치챈 조태오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민

준이 접촉하려는 투자사들에 압력을 넣어 미팅을 취소시키거나, 카페 안단테 앞에 덩치 큰 사내들을 배치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민준아, 방금 K 투자사에서 못 오겠대. 성진 물산 쪽에서 압력이 들어왔나 봐..."


서윤의 떨리는 목소리에 민준은 잠시 펜을 멈췄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상관없어. 주류 시장이 안 되면 비주류로 간다. 성진 물산과 적대적 관계인 펀드들을 공략할 거야."


작전 5일째, 민준은 피로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서윤이 익명의 퀵서비스로 온 작은 봉투를 민준에게 건넸다. 봉투 안에는 하윤이 쓴 짧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선배님, 제 방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이 꼭 카페 안단테의 조명 같아요. 선배님이 제 편이라고 믿고 저도 여기서 버티고 있어요. 요리는 못 해도, 기도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기다릴게요.]


하윤의 비뚤비뚤한 글씨를 본 민준의 눈에 다시 불이 켜졌다.

그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접니다. 제안서 수정본 보냈습니다. 조태오가 터뜨릴 폭탄을 피하고 태성의 알짜 자산을 가져갈 마지막 기회입니다."


일주일째 되는 날 오후 5시. 민준은 다시 태성 그룹 본사 로비에 나타났다.

일주일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서류 가방은 묵직했다.

회장실에 들어선 민준은 세 곳의 사모펀드와 두 곳의 투자은행에서 받은 '투자 확약서(LOC)'를 이 회장의 책상 위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총액 3,200억 원. 성진 물산이 제시한 금액보다 200억 원 많습니다. 조건은 조태오의 경영권 참여 배제와 태성 유통의 독립 경영권 보장입니다. 시장은 조태오라는 리스크를 걷어낸 태성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 회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확약서에 찍힌 인감들을 확인했다.

그 어떤 노련한 CFO도 일주일 안에 해내지 못할 일을, 카페 앞치마를 두르던 청년이 해낸 것이었다.

그때, 조태오가 얼굴이 붉으락달록해진 채 회장실로 들이닥쳤다.


"회장님! 이 새끼 말 믿지 마세요! 이거 다 가짜..."

"입 닥쳐!"


이 회장이 호통을 쳤다.


"조태오, 자네가 뒤에서 투자사들을 협박했다는 보고까지 다 받았네. 내 기업을 망치려 드는 놈에게 딸을 줄 순 없지."


이 회장의 서슬 퍼런 호통이 떨어지자, 회장실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영하로 얼어붙었다.

자신의 모든 계획이 고작 '아르바이트생'이라 무시했던 민준에 의해 무너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조태오의 눈동자는 이성을 잃고 뒤집혔다.


"이... 이 근본도 없는 새끼가 감히 내 앞길을 막아?!"


조태오는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하 회장의 책상 위에 놓인 묵직한 수정 재떨이를 낚아챘다.

비열한 술수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서 '실패'란 단어는 용납될 수 없는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조태오가 재떨이를 민준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으려는 찰나, 민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휘익~~'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재떨이가 민준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 뒤편의 유리 장식장을 박살 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아수라장 속에서 조태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품 안에서 숨겨온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미 이성은 마비되었고, 오로지 눈앞의 적을 파괴하겠다는 광기만이 남은 걸로 보였다.


"너만 없었으면...! 너만 없었으면 태성도, 하윤이도 다 내 거였어!"


조태오가 칼을 찌르듯 내뻗자, 이 회장은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민준의 눈은 차분했다. 지난 2개월간 카페 안단테에서 수백 번, 수천 번 무거운 원두 포대를 나르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뜨거운 압력을 견디며 다져진 근육들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민준은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틀며 조태오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 더러운 입에 하윤 씨 이름 담지 마."


민준의 낮은 목소리가 조태오의 귀에 박혔다. 민준은 조태오의 팔을 그대로 꺾어 내리며 그의 복부에 강력한 무릎 치기를 가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태오의 숨이 턱 막혔다.

민준은 멈추지 않고 조태오를 회장실 벽으로 밀어붙인 뒤, 칼을 쥔 손목을 비틀어 무기를 떨어뜨리게 했다.


"으악! 아아악!"


벽에 짓눌린 조태오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민준은 그의 양팔을 뒤로 꺾어 완벽하게 제압한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같은 놈에겐 하윤 씨도, 이 회사도 아까워. 네가 망친 수많은 사람의 인생, 이제 네가 돌려받을 차례야."


그때 보안 요원들이 회장실로 들이닥쳤다. 이 회장은 떨리는 손으로 조태오를 가리켰다.


"당장 끌어내! 이 미친놈을 경찰에 넘기고, 성진 물산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공표해!"


조태오가 비참하게 끌려나간 뒤, 고요해진 회장실에서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셔츠 소매는 찢어졌고, 튀어 오른 유리 파편에 뺨이 살짝 긁혀 피가 흘렀다.

민준은 흐트러진 슈트를 다듬고 하 회장을 바라보았다. 이 회장은 책상에 깊게 기댄 채, 방금 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 민준의 모습에서 '진짜 실력'과 '진심'을 동시에 보았다.


"자네... 다친 건 괜찮나?"

"괜찮습니다. 약속하신 증명은 끝났습니다. 이제 하윤 씨를 보내주시죠."


하 회장은 묵묵히 인터폰을 눌렀다.

"하윤이 데려와. 당장."


잠시 후, 굳게 닫혀있던 회장실 문이 열리고 하윤이 나타났다. 엉망이 된 민준의 모습과 깨진 유리 조각들을 본 하윤의 눈에 눈물이 왈칵 고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민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선배님...! 선배님 다쳤잖아요... 어떡해..."


민준은 하윤의 등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으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이제 집에 가요, 우리. 카페 안단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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