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서로에 대한 진심
- 서문 -
따뜻한 커피 향과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얽히는 카페 안단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 등장인물
- 민준(23살) : 명문대를 휴학하고 군 전역 후, 복학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주인공,
눈치는 없지만, 다정한 성격
- 서윤(23살) : 카페 안단테 사장의 딸, 털털하고 까탈스러운 성격. 민준이와 동갑
- 하윤(18살) : 비밀을 간직한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소녀
- 점장 : 카페 안단테 사장의 처남, 카페의 경영을 맡고 있음
- 보안팀장 : 태성그룹 보안팀장
- 이 회장 : 태성그룹 회장, 하윤의 아버지
- 조태오 : 하윤의 약혼남, 여성 편력이 심함, 여자를 보기를 도구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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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서로에 대한 진심
하윤을 구출하고 카페가 안정을 찾았지만, 민준과 서윤 사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민준은 복학 준비를 하던 노트를 덮고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향했고, 그 뒤를 서윤이 조용히 따라 올라갔다.
"강민준, 너 진짜 바보냐?"
서윤의 목소리에 민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서윤은 난간에 기댄 채 먼 하늘을 보고 있는 민준에게 다가가 멈춰 섰다.
"하윤이 구하겠다고 네 인생 다 걸고 뛰어들 때... 솔직히 멋있기도 했지만, 난 무서웠어. 네가 잘못될까 봐 무서웠고, 네가 정말 하윤이한테 영영 가버릴까 봐 숨이 막히더란 말이야."
민준은 당황한 듯 입을 열려했지만, 서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윤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도 민준에게 진심을 전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나, 네가 한국대생이라서 좋아하는 거 아냐. 그냥 너랑 같이 메뉴 고민하고, 너 사고 치면 구박하고, 네가 내려주는 맛없는 첫 커피 마셨던 그 2개월이... 내 평생 가장 설레는 시간이었어. 넌 어때? 너한테 나는 그냥 일 잘하는 점장 딸이야?"
민준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윤의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민준은 그 순간 깨달았다. 서윤을 향한 마음을...
그는 서윤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하윤을 향한 마음이 '지켜주고 싶은 연민'이었다면, 서윤을 향한 마음은 '함께 걷고 싶은 확신'이었다.
"서윤아, 나 학교 자퇴하고 세상 등지고 살 때... 나한테 처음으로 다시 커피 향기를 맡게 해 준 게 너였어. 하윤 씨를 지키려 했던 건, 어쩌면 너랑 같이 있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몰라. 나한테 안단테는 이 카페가 아니라, 너야."
민준이 서윤을 천천히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서윤은 참았던 눈물을 민준의 어깨에 쏟아내며 그를 꽉 껴안았다.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이 여름밤의 정적 속에서 하나로 포개졌다.
한편, 두 사람에게 줄 시원한 수박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오던 하윤은 계단 틈새로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하윤은 들고 있던 쟁반을 꽉 쥔 채 숨을 죽였다.
민준이 서윤을 안아주는 모습, 그리고 서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
그것은 민준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보호자의 다정함'과는 전혀 다른, '남자의 사랑'이었다.
'아... 선배님이 보던 곳은 처음부터 서윤 씨였구나.'
하윤은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윤이 미워지지는 않았다.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미끼를 자처했던 서윤, 자신의 서툰 요리에 밀가루 범벅이 되면서도 웃어주던 서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윤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내려왔다.
옥상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두 사람의 낮은 속삭임을 뒤로한 채, 하윤은 어두운 주방으로 돌아와 수박 조각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달콤한 수박 맛 뒤에 짠 눈물 맛이 섞였다.
"치...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방해할 수도 없잖아."
하윤은 눈물을 쓱 닦아내며 혼잣말을 했다.
하윤에게는 슬픈 하루였다.
비록 첫사랑은 쓰라린 짝사랑으로 끝이 났지만, 하윤은 이제 도망치지 않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만큼 성장해 있었다.
하윤에게는 어제 옥상에서의 비밀을 가슴에 묻은 밤은 길었다.
다음 날 아침, 카페 '안단테'의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여름 햇살은 잔인할 만큼 눈부셨지만, 카페 안의 공기는 어딘지 모르게 팽팽했다.
민준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와 머신을 점검하고 있었고, 서윤은 어제의 고백 때문인지 발그레한 얼굴로 원두 봉투를 정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핑크빛 기류를 깨뜨린 건,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출근한 하윤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하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드는 순간, 민준과 서윤은 동시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윤의 눈이 어찌나 부었는지, 평소의 사슴 같은 눈망울은 온데간데없고 잘 익은 완두콩 두 개가 붙어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윤 씨! 눈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야, 너 누가 때렸어? 아님 어제 잠 못 잤어?"
민준과 서윤이 걱정스레 다가오자, 하윤은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두 사람을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는 카운터 위로 당당하게 올라서서(사실은 의자 위에 올라가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자, 다들 주목하세요! 저, 이하윤이 공식 선포합니다!"
하윤의 뜬금없는 외침에 점장님까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저, 이제 민준 선배님 포기할 거예요! 그러니까 서윤 씨, 그렇게 불안한 눈으로 나 견제 안 해도 돼요! 어제 옥상에서 두 사람... 다 봤거든요!"
민준과 서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하윤은 부은 눈을 치켜뜨며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이 서윤 씨 안아줄 때 제 심장이 바스러지는 줄 알았지만... 뭐, 인정할게요!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제가 끼어들 틈이 0.1mm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억울해서 밤새 울었더니 눈이 이 모양이 됐네요!"
하윤은 씩씩거리며 민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제 앞에서 손을 잡는다거나, 눈빛으로 꿀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염장 질기'는 절대 금지예요! 만약 제 눈에 띄면, 선배님이 내리는 모든 아메리카노에 몰래 설탕 세 스푼씩 넣어서 손님들한테 다 쫓겨나게 할 테니까요!"
하윤의 엉뚱하고도 귀여운 협박에 민준은 헛웃음을 터뜨렸고, 서윤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표정으로 하윤을 바라보았다.
"야... 이하윤. 너 진짜..."
서윤이 다가가 하윤을 안아주려 하자, 하윤은 다시 몸을 뒤로 뺐다.
"아직 포옹까진 허락 안 했어요! 전 지금 아주 냉정하고 쿨한 상태거든요! 얼른 얼음찜질팩이나 가져다주세요. 손님 오기 전에 '말자' 눈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결국 하윤은 서윤이 가져다준 아이스 팩을 눈에 대고 카운터 구석에 앉았다.
민준은 미안한 마음에 하윤이 제일 좋아하는 초코 시럽을 듬뿍 넣은 모카를 내밀었다.
"하윤 씨,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하윤은 아이스 팩 너머로 민준을 한 번 째려보더니, 빨대를 물고 쭉 들이켰다.
"미안하면 나중에 저보다 훨씬 더 잘생기고, 공부도 더 잘하고, 요리까지 잘하는 남자 소개해주셔야 해요! 아시겠죠?"
그 모습에 서윤이 옆에서 피식 웃으며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내가 우리 아빠 인맥 다 동원해서 재벌가 말고 '진짜배기'로 알아봐 줄게."
여름의 끝자락, 카페 '안단테'의 소동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한 소녀의 첫사랑은 부은 눈과 함께 조금은 아프게 저물었지만,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우정과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싹트고 있었다.
이제 카페 안단테는 세 사람이 함께 만드는, 진짜 '안단테'의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