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완결)
- 서문 -
따뜻한 커피 향과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얽히는 카페 안단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 등장인물
- 민준(23살) : 명문대를 휴학하고 군 전역 후, 복학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주인공,
눈치는 없지만, 다정한 성격
- 서윤(23살) : 카페 안단테 사장의 딸, 털털하고 까탈스러운 성격. 민준이와 동갑
- 하윤(18살) : 비밀을 간직한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소녀
- 점장 : 카페 안단테 사장의 처남, 카페의 경영을 맡고 있음
- 보안팀장 : 태성그룹 보안팀장
- 이 회장 : 태성그룹 회장, 하윤의 아버지
- 조태오 : 하윤의 약혼남, 여성 편력이 심함, 여자를 보기를 도구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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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완결)
어느덧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는 사라지고, 카페 '안단테'의 유리창 밖으로는 하얀 눈송이가 소복이 내려앉는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여름날의 007 작전과 가슴 졸이던 사건들은 이제 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카페 안은 화려한 트리 조명과 시나몬 향 가득한 뱅쇼 냄새로 포근했다.
영업을 일찍 마친 점장님은 "오늘 밤은 너희들 세상이다!"라며 통 크게 가게를 내주셨다.
민준, 서윤, 그리고 하윤은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하윤이 야심 차게 준비한(물론 이번엔 서윤의 철저한 감독하에 만들어진) 해물 파스타가 놓여 있었다.
"자, 다들 기억나죠? 내 인생 첫 요리, 보랏빛 파스타!"
하윤의 농담에 민준과 서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민준 오빠 표정 진짜 가관이었는데. 무슨 독약 먹는 줄 알았잖아."
서윤이 민준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을 쳤다.
"야, 그땐 정말 카페 통째로 날아가는 줄 알았다니까."
민준은 서윤의 손을 자연스럽게 맞잡으며 대답했다.
이제 두 사람은 숨기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공식 커플이 되어 있었다.
하윤은 그 모습을 보며 예전처럼 질투하는 대신, 익살스럽게 눈을 흘기며 와인 잔을 들었다.
하윤은 이제 '태성 그룹의 막내딸'이 아닌,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평범하고 당당한 대학생 '이하윤'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회장님도 민준이 보여준 진심과 실력에 마음을 돌려, 하윤의 자유를 인정해 주었다.
가끔 민준에게 전화를 걸어, 하윤하고 결혼을 제안하기도 해서,
민준은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자네 학교 졸업하면, 1순위로 태성 그룹에 들어와야 하네. 그렇게 알고 있겠어."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곤 했다.
"선배님은 공부해 보니까 어때요? 이제 과탑 복귀인가요?" "말도 마. 오랜만에 펜 잡으니까 손가락 마비되는 줄 알았어. 그래도 서윤이가 도서관에서 감시해 준 덕분에 이번 학기 성적표는 꽤 볼만해."
민준은 당당하게 한국대학교 과잠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카페 안단테'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알바 장소가 아닌, 인생의 진짜 가치를 가르쳐준 곳이었으니 말이다.
창밖의 눈발이 점점 굵어지자 민준이 조용히 일어나 레코드 플레이어 위에 LP판을 올렸다.
잔잔한 재즈 캐럴이 흐르고, 세 사람은 창밖의 설경을 바라보았다.
"여름엔 정말 죽을 것 같이 뜨겁고 힘들었는데, 이렇게 눈 내리는 걸 보니까 다 꿈같아요."
하윤이 창가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그러게. 그때 우리가 그 검은 양복들 피해서 무대 뒤로 숨었을 때... 기억나? 나 그때 네 심장 소리가 카페 머신 소리보다 크게 들렸어."
서윤이 민준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민준은 두 사람을 향해 잔을 높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눈보라를 만나든 오늘처럼 서로의 곁에 있어 주자.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뜨거웠던 여름처럼, 그리고 이 따뜻한 겨울처럼 말이야."
세 사람은 함께 잔을 부딪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우리들의 안단테를 위하여!"
하윤은 두 사람 사이에서 환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비록 자신의 첫사랑은 눈처럼 녹아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우정과 '진짜 가족' 같은 사람들이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카페 안단테의 불빛은 새벽이 깊도록 꺼지지 않았다.
밖에는 온 세상의 상처를 덮어주려는 듯 하얀 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고, 그 안에는 가장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향기로운 커피 향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
나른한 오후 3시, 손님이 한바탕 빠져나간 카페 안단테에는 평소라면 감미로운 재즈가 흘러야 했지만, 오늘은 카운터 쪽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민준! 내가 행주 색깔 맞춰서 두라고 몇 번을 말해? 파란색은 테이블용, 하얀색은 머신용! 왜 자꾸 섞어 놓는 건데?"
민준은 원두 찌꺼기를 비우다 말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서윤아. 바쁠 때는 눈에 보이는 거 집어 쓰는 거지. 그리고 어차피 둘 다 깨끗하게 빨아 놓은 건데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큰일이지! 이건 우리 카페의 시스템이야, 시스템! 넌 명문대 경영학과 나왔다는 애가 이 효율적인 동선을 무시하는 거야?"
민준도 지지 않고 수건을 어깨에 걸치며 맞받아쳤다.
"너야말로 그래. 아까 손님 라테 나갈 때, 내가 우유 온도 65도 맞추라고 했지? 너 아까 보니까 대충 손대보고 내보내더라. 온도가 1도만 틀려도 단맛이 달라진다고."
"참 나, 아주 바리스타 납셨네? 야, 나 여기 점장 딸이야. 65도인지 66도인지 내 손바닥이 더 정확해. 너야말로 아까 휘핑크림 모양 그게 뭐야? 무슨 똥 싸놓은 것처럼..."
"뭐? 똥?! 그건 내가 하윤 씨한테 배운 '추상적 예술' 스타일이야!"
두 사람이 카운터 한복판에서 코끝을 맞대고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구석에서 디자인 과제를 하던 하윤이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저기요, 두 분? 손님들이 다 쳐다보거든요? 그리고 싸울 거면 좀 무섭게 싸우든가, 목소리는 큰데 눈은 서로 꿀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잖아요."
하윤의 말에 민준과 서윤이 동시에 흠칫하며 거리를 두었다.
민준은 큼큼거리며 애꿎은 컵을 닦았고, 서윤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시선을 피했다.
"누가... 누가 꿀 떨어진대? 난 지금 매우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중이야!"
"나도 경영학적 관점에서 피드백을 주는 것뿐이야."
잠시 후, 민준이 슬그머니 서윤 앞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서윤이 좋아하는 시럽을 듬뿍 넣은 '아이스 바닐라 라테'였습니다. 유리잔 겉면에는 네임펜으로 삐뚤 비뚤 하게 글씨가 적혀 있었다.
[행주 색깔 잘 맞출게. 미안. - 민준]
서윤은 그걸 보고 피식 웃음이 터지는 걸 참으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한 모금 쭉 들이킨 서윤이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이거 좀 달다?"
"단 거 먹고 기분 풀라고 일부러 많이 넣었지."
"흥... 다음부턴 시럽 한 펌프 줄여. 그리고 파란 행주는 왼쪽이야. 알았어?"
민준이 군말 없이 "예, 예. 점장님." 하며 서윤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하윤이 고개를 저으며 스케치북에 한 문장을 적었다.
[오늘의 안단테: 싸움 10분, 염장 24시간.]
여름날의 치열했던 사건들은 지나갔지만,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카페 안단테의 새로운 일상이 되어 커피 향과 함께 기분 좋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