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09. (화)
‘달그닥 달그닥’
병원을 다녀와 도시락통을 설거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 일찍 시작된 병원 진료는 오후 늦게서야 끝이 났고, 엄마는 내일 CT와 내시경을 다시 찍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오늘 하루 입원하기로 했다. 아산병원 같은 큰 병원에서 당일 입원은 흔치 않은 일인데, 마음이 급한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일정 변경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 다만 바쁜 병원은 늘 친절하기만 하지는 않아서, 몸과 마음이 약해진 환자에게는 이런 배려조차 설명의 결여 속에서 다소 거칠게 닿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정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말에, 걱정보다는 고마움을 먼저 꺼내보기로 했다.
“나는 눈 뜨면 배부터 고파~”
아침에 눈을 뜨면 배부터 고프다는 엄마는 평소 아침밥을 거르지 않는다. 그 영향인지 나 역시 독립을 하고서도 한동안은 아침을 꼭 챙겨 먹었다. 요즘은 간헐적 단식이 나에게 더 맞는 것 같아 아침을 생략하고 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매번 내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아침 식탁에는 늘 고기 반찬이 올라왔다. 사춘기 아들이 돼지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면 소고기를 조금 사다 두거나, 와인에 돼지고기를 재워 다시 구워주던 엄마였다. 그런 정성 앞에서 아침이 먹기 싫은 날에도 나는 숟가락을 한 번 더 들었고, 고기 먹고 힘이 나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게 엄마의 응원이자 사랑이라는 걸,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도 오늘은 아침을 거르자고 했다. 병원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검사를 대비해서였다. 공복이어야 가능한 검사들이 많으니, 먼 길을 온 만큼 만약을 대비하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여러 번 병원을 오가는 피로보다, 아들에게 끼칠 번거로움을 먼저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도시락을 싸서 여건이 되면 먹기로 했다. 고구마 몇 개, 계란 두어 개, 그릭요거트에 베리 몇 알. 병원 지하에 식당이 많으니 간식이면 충분하겠거니 했다. 전날 저녁, 아내와 함께 도시락을 싸고 다음 날 인사를 나눈 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언제나 초조하고 지루했다. 9시 반으로 예약된 종양내과 진료는 한 시간을 넘겨서야 시작됐다. 지난번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을 거라 생각했고, 오늘은 무언가 방향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하지만 종양내과는 우리가 제출한 자료를 처음 마주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일을 서두르려는지 추가 검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오늘 입원해 내일 PET CT와 내시경을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엄마는 예정에 없던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 절차는 생각보다 길었다.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마치고 여러 동과 층을 오가다 보니, 입원 수속만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침부터 쌓였을 피로가 걱정돼 식사를 권했고, 엄마도 배가 고프다고 했다. 식당을 찾아 내려갔지만 어디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결국 마트에서 몇 가지를 더 사서, 싸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끝에, 불편하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겨우 찾았다.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올라왔지만, 우선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가족을 따라 학익동에서 원당동으로 이사했다.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신설 학교였던 원당중학교였고, 급식실이 없어 한동안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했다. 엄마는 그때도 내 도시락에 유난히 많은 정성을 쏟았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펼치면 대부분은 동그랑땡이나 떡갈비 같은 익숙한 반찬이었는데, 내 도시락은 늘 조금 달랐다. 잡곡밥에 건강을 생각한 반찬들. 특히 갈비찜이 기억난다. 나는 그 시절 유난히 주목받는 걸 부끄러워했는데, 엄마의 도시락은 늘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다. 쿨한 척을 하고 싶었던 건지, 다 커서도 엄마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라는 걸 들키는 게 부끄러웠던 건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괜히 싸구려 반찬들이 더 맛있다고 말하곤 했다.
“야, 갈비찜 국물 안 먹을 거면 나 다 줘라.”
그래서 좋아하던 갈비찜 국물을 양보했던 기억도 난다. 그 무렵에는 엄마의 정성스러운 도시락이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는 도시락을 먹었다. 지하의 번듯한 식당들과 대비되는 좁고 붐비는 자리. 가벼운 도시락과 달리 마음은 무거웠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음식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아들과 며느리가 싸 준 도시락이 좋은지 말끔히 드시고는, 기다려 먹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다며 다음에도 도시락을 싸 오자고 했다. 학창 시절 엄마의 도시락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과, 지금 이 초라한 도시락 앞에서의 부끄러움은 같은 말이면서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입원 수속 안내 문자가 왔다. 서관 7층으로 이동해 병실을 확인하고, 준비 없이 입원하게 된 탓에 마트에 들러 생필품을 샀다. 충전기와 칫솔 세트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고르다 보니, 내가 어딜 가든 빠뜨린 건 없는지 확인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병실로 돌아가 사 온 것들을 건네고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도시락통을 꺼내 설거지를 시작했다. 말끔히 비워진 도시락통 안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남아 있었다. 차가운 물로 씻어내다 문득 수도를 온수 쪽으로 돌렸다. 따뜻한 물이 손등을 타고 흘렀다. 엄마의 도시락이 내게 건네주던 온기 역시, 아마 이와 비슷한 온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