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2025. 12. 01. (월)

by 황인재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학익동에서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시절의 기억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빛바래고 흐릿하지만, 오래된 사진만이 가진 따스함까지 닮아 있어, 그때를 떠올릴 때면 괜히 가슴 속에 온기가 번져오곤 한다. 특히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그렇다.

어렸을 때 자주 가던 병원이 있었다. 병원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OO소아과내과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내과는 어른이, 소아과는 아이가 가는 곳”이라고 알려주었던 덕분에 그 이름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엄마와 함께 걷던 길도 떠오른다. 내가 아직 키가 작았을 때는 엄마 호주머니나 벨트를 잡고 걷기도 했고, 조금 더 자라서는 엄마 손을 잡고 걸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어린아이에게 참 무서운 공간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 병원이라는 공간의 분위기를 초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아무리 무서운 진료도 덜 무서웠고, 주사도 덜 아프게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대학교에서 술을 마시다 얼굴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꽃샘추위가 매서웠던 어느 밤, 그때도 엄마가 달려왔다. 키는 훌쩍 자라 엄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졌는데도,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아기였던 것이다. 다친 것도 속상했지만,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한 게 더 미안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이날이 엄마가 나의 보호자로 병원에 함께 간 마지막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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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다. 곧이어 엄마도 일어나 준비를 했고, 아내도 일어나 엄마 아침 식사를 챙겨주었다. 셋이 식탁에 마주 앉아 밤새 잘 잤는지, 방은 따뜻했는지 안부를 나누고 엄마와 나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깜깜한 겨울 새벽, 세상은 생각보다 일찍 움직이고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수많은 차들이 자기 삶을 향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한 시간 반 남짓 병원으로 가는 동안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 칭찬으로 시작해 윤슬이 육아 이야기, 엄마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내 미래의 가족 계획까지.


분주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삶과 생명의 소중함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아산병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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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병원은 명성만큼이나 규모가 거대했다. 출입구 근처에 주차한 뒤 안으로 들어서자, 지하층에는 옷가게와 음식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마치 쇼핑센터나 지하상가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상점마다 사람들이 붐볐다. 지나가다 들려오는 대화를 엿들어 보니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연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아산병원이 진료 의뢰서 없이는 예약조차 어려운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놀라웠다.




병원은 규모만큼 절차도 복잡했다. 동관 1층 원무창구에서 환자등록을 하고, 1층 로비의 CD 등록기에 미리 준비한 자료들을 저장해야 했다. 출입증을 발급받은 뒤 각자 진료과로 이동해야 했는데, 우리는 서관 1층 위장관외과였다.




상점들이 늘어선 통로를 따라 걷다 보니, 마치 엄마와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서울 나들이가 떠올랐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지하철이며 전철을 자주 오갔다. 복잡한 통로는 나에게는 재미있는 세상이었고, 간식 가게와 노점, 호객꾼들까지 온갖 볼거리가 가득했다. 엄마는 때때로 델리만쥬를 사주었는데, 안의 커스타드 크림이 너무 뜨거워 늘 입술이 데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이 좋아서, 나는 지금도 버스보다 지하철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괜히 엄마에게 빵 하나 사드릴까 물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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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관외과에 도착하자 먼저 신체 계측을 하고, 이어 간호사의 사전 상담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진료실 앞 대기로 이동했다. 담당 주치의는 ‘유문원’ 선생님이었다. 9시가 조금 안 되어 진료가 시작됐고, 곧이어 엄마 이름이 호출되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안과 밖의 공기가 이렇게 다르던가 싶었다. 의사 선생님 얼굴을 마주하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무슨 말을 듣게 될까?’


행복한 상상이든 불행한 상상이든 진료 결과를 듣기 전엔 아무것도 단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그 앞에 서니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실타래가 엉키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마음을 꾸깃꾸깃 모으는 사이, 의사 선생님이 먼저 물었다.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던 것 같으세요?”




잠시 후, 상담 내용을 정리하면 이랬다.




1. 위장관외과만으로는 판단이 어렵다. 위 근육종 자체가 흔하지 않고 GIST 등 다른 질환의 가능성도 있어 타과와 상의가 필요하다.






2. 육종의 치료는 원칙적으로 외과 수술이지만, 이미 나은병원에서 종양 부위를 제거한 상태라 치료 방향 결정이 쉽지 않다.






3. 따라서 기존 자료를 종양내과와 함께 검토하여 최선의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4. 종양내과 진료 예정일 : 2025. 12. 9.(화) 09:30






5. 위장관외과 진료 예정일 : 2025. 12. 10.(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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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마전동 본가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 집으로 모셔서 식사를 함께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새벽부터 움직인 피로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생각해 딱 한 번만 권하고 말았다.




초진이라 큰 결론 없이 끝난 진료였지만, 어쩌면 작은 희망을 품었을 엄마에게는 더 큰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나은병원의 초동 조치가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결국 결과론일 뿐. 그래서 엄마와 나는 그 어떤 평가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속의 속상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손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새어 나왔는지, 집에 가는 동안 엄마는 죽음과 아쉬움이 스친 말들을 간간이 흘렸다. 그때마다 나는 “지금은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야”라고 다독였다.




“우리 즐겁게 일상을 살아가고, 최선을 다해 병을 치료해 봅시다.”




마전동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엄마는 다음 주 진료가 이틀로 나뉘었다며, 혼자 가도 된다는 말을 했다. 나는 괜찮다고, 앞으로 병원은 나와 함께 가자고 말했다.




엄마를 내려드리고 돌아가는 길,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엄마 손을 잡고 병원을 가던 나. 학익동의 거리. 빛바래 있던 기억들이 다시 선명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리만 서로 바뀐 채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의 보호자는 이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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