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인내의 관계

2025. 12. 10. (수)

by 황인재

아기가 태어나고 난 뒤, 아내가 더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가 윤슬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든다. 나는 윤슬이가 너무 예쁘다가도 떼를 쓰거나 보채면, 나도 모르게 인내심이 시험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참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말이다. 화가 나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은 마치 윤슬이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엄마들에 대한 나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과 인내를 구분하지 않고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엄마라는 말이 성스럽고, 존경받는 단어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혼난 적이 있었나?'



곰곰이 떠올려 보니, 어린 시절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혼난 기억이 없다. 내가 유난히 얌전했던 것도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 기억이 없고, 엄마에게 야단맞은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말 하나가 있다.



“난 네가 잠들면 언제 또 눈뜨나~ 언제 일어나나~ 하면서 기다렸어.”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다만 아기가 잠들면, 그제야 부모도 잠시 쉴 수 있다. 그런데 엄마는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다시 눈뜨는 순간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아기를 키워보니 그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애초에 엄마의 감정의 출발선이 나와는 달랐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결국 엄마의 저 말과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혼난 적이 없었을까?.' 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유난히 인내심이 강해서라고 생각했다. 보통이라면 화가 났을 상황에서도, 한 번 더 이해하고 넘겨주었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엄마에게는 인내심을 사랑으로 이겨낼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닐까? 인내가 사랑으로 바뀐 게 아니라, 사랑이 인내를 필요 없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더라.



병원에 엄마를 데리러 가는 날, 아침부터 전화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출발 전, 오늘 일정과 검사 상황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내가 궁금해하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이어가셨다. 그게 못마땅했다는 게 내 변명이다. 사실은 엄마 곁에 함께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짜증이, 과녁을 잘못 찾아 날아간 것이었다. 병원에는 엄마 위내시경이 끝날 무렵 도착했다. 병실로 향하던 중, 담요에 몸이 덮인 채 이송되는 환자 침대를 보았다. 힘없이 늘어진 형상과 그 위를 덮은 담요가 순간적으로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잠시 후, 그 침대가 내 옆을 지나갔다.



“환자 지나가요~!”



그 환자는 엄마였다. 투병이 시작되고도 애써 외면하던 단어가, 방심하지 말라는 듯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수면마취로 내시경을 끝낸 엄마가 병실에 도착하고, 잠시 후에는 담당 간호사가 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곧이어 퇴원 수속을 하러 가도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면마취가 조금 덜 깬 엄마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왔다. 수면마취를 한 엄마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사랑도, 아내의 사랑도 어쩌면 그런 마취와 닮아 있는 건 아닐까. 화가 날 만한 순간들을 마취해버려서, 인내해야 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 참아낸 게 아니라, 아프지 않게 만든 사랑.



중간쯤 가서는 마취 기운이 다 깬 걸 서로 알았지만, 차에 도착할 때까지 그냥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와 손을 잡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색했지만,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짧은 입원 동안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큰 병원은 너무 과하다며, 어디를 가든 휠체어를 태워주고 내시경실까지 침대에 실어 데려가더라는 이야기들. 같은 시간을 나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받아들이는 엄마의 명랑함에 고맙다는 마음도 들었고, 참 내 속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은 어쩌면 인내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인내를 필요 없게 만드는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내를 보며 나는 아직 그 자리에 닿지 못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도 오늘은,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방향을 다시 기억하며 가족에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꽉 막힌 퇴근길 도로에서 가속페달 대신 브레이크를 살살 밟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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