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30. (일)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주책스럽게도 딸의 결혼식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만약 결혼식에서 내가 축사를 한다면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저는 평생 세 여자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있을 엄마와 아내와 윤슬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했다. 그땐 그 소원이 너무 당연히 이루어질 거라 여겼다. 가끔 세상은 안일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당연한 건 없다는 걸 가혹하게 가르쳐 준다.
점심 약속 시간이 되어 동생네가 먼저 도착했다. 전날 아내와 이번 일에 대한 우리의 방향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맞췄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고 병원도 좋은 곳이니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고,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점점 지쳐갈 엄마의 마음과 몸을 보살피자고 했다. 동생과도 뜻이 맞았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아빠가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곁에서 잡아주자고.
조금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시작했다. 누구도 먼저 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상 대화를 이어가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월요일에 병원에 몇 시까지 가야 된다고요?”
순간 적막이 흐르더니 마음들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검사 과정, 병원 일정, 현재 상태, 컨디션, 보험까지 우리가 가진 정보를 모두 종합했다.
이후 결론은 하나였다. 복잡한 출근길 시간대에 엄마 아빠 둘이 서울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건 무리였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내가 차로 모시고 가는 게 훨씬 나았다.
점심을 마저 먹고 제수씨가 상 받은 이야기, 내가 턱걸이 대회 나갔던 이야기 같은 소소한 즐거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정리했다. 동생네와 아빠는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건 엄마와 아내 소영이, 그리고 윤슬이. 그렇게 ‘세 여인과의 일상’이 시작됐다.
아내 이야기도 조금 해야겠다. 아내와 나는 대학생 때 만나 십 년을 연애했고, 재작년에 결혼했다. 올해는 윤슬이라는 사랑스러운 결실이 태어났고. 우리 부부는 모든 면에서 너무 잘 맞는데, 사실은 다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천성적으로 밝고 착하고, 내가 아는 한 아내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내가 너무 고맙다.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배려하고, 나를 도와줄 행동을 스스럼없이 해주는 사람. 나의 고민에 항상 돌파구를 만들어주는 사람.
가족들이 돌아간 뒤 엄마는 하루 종일 윤슬이를 안아주고 놀아줬다. 남들이 보면 힘든 병에 걸린 엄마를 둔 자식의 삶이 어떻게 보일까? 불치병 가족의 삶은 지옥이라는 말도 있는데, 내 앞에 씩씩한 엄마와 사려 깊은 아내, 이쁜 딸이 함께 있으니 바보같이도 지금 우리 집이 천국 같다. 그래서 더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세 여인과 함께 먹고, 자고, 말하고, 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