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8. (금)
삶에는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찾아오는 듯하다. 그래서 인생에는 마치 ‘행복의 균형자’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쪽 저울에는 행복의 무게를 달고, 다른 쪽에는 고난의 무게를 달아서 한쪽으로 치우쳐지면 반대편에 부하를 주어 균형을 잡는 그런 장치 말이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결국은 어떤 운명 같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찾아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사람의 성향을 숫자로 표현해 본 적이 있다. 1은 극단의 슬픔, 10은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수치라고 하면 나는 5와 7 사이에서만 감정을 표현하는 시시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기쁜 일을 겪어도 힘껏 기뻐하지도 못하고, 타인의 사랑이나 배려도 넘치도록 표현하지 못하며, 슬픔조차 있는 그대로 꺼내 보여주지 못하는 내 성격이 아쉬웠다. 그런데 ‘행복의 균형자’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극단적인 기쁨도 슬픔도 없는 내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한 번에 엄청난 행복이 찾아오고 그 순간 큰 기쁨을 느낀다면, 균형추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반작용으로 큰 불행을 던져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요즘 내가 받은 행복을 너무 크게 표현했나 보다. 그런 탓인지,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와 김장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시간 날 때 통화~”
주말 점심에 우리 집에 오기로 한 일정이 바뀌었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했는데, 이어진 목소리는 평소보다 진지했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했다. 건강검진 이후 계속 위가 불편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가, 나은병원에서 내시경으로 용종을 제거했는데 조직검사 결과 악성 종양이라는 거였다. 이름은 “위 평활근육종”.
흔하지 않은 암이고 나은병원에서는 자신이 없어 상급병원으로 의뢰서를 써주겠다 했고, 서울아산병원으로 일단 예약했다 했다. 엄마와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검사결과지, 보험 가입 내용 등을 하나씩 물었다. 최대한 차분한 척하며.
퇴근길에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했고, 동생에게도 연락이 왔다. 주말에 모두 모여 이야기하기로 했다. 엄마는 씩씩한 척인지, 정말 씩씩한 것인지, 방어기제인지 초연함인지 모르겠는 메시지들을 보내며 내 가슴 속에 장작불을 조용히 때웠다. 잔잔하게 아프도록.
차 안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가정의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자. 그리고 엄마를 최선을 다해 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