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미 늦었다 | The Point of No Return

by 박온유

PANGAEA: The Inevitable Already Begun

《판게아: 이미 시작된 필연》


박온유 저






프롤로그

이미 늦었다 | The Point of No Return


2026년 4월 3일 새벽 2시 17분, 호르무즈 해협의 너비가 가장 좁은 지점(불과 39킬로미터)에서 첫 번째 기뢰가 발견됐다.

그 뉴스가 세계 시장에 닿는 데는 12분이 걸렸다. 런던의 선물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브렌트유 선물이 분당 2.3달러씩 올랐다. 싱가포르의 해운 보험사들이 통과 보험료 산정을 중단했다. 두바이의 LNG 터미널이 선적을 일시 정지했다. 도쿄의 경제산업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 모든 것이 첫 번째 기뢰가 발견된 지 한 시간 안에 일어났다.

대구의 한 주유소 사장은 그날 아침 뉴스를 보고 기름값 안내판의 숫자를 바꿨다. 전날보다 리터당 80원을 올렸다.

점심때 다시 올렸다. 저녁에 한 번 더 올렸다. 하루에 세 번.

그는 호르무즈 해협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다만 자신의 기름 도매가가 한 시간 단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울산의 석유화학 단지에서는 원료 수급 회의가 오전에 두 번 열렸다.

거제의 조선소에서는 발주처로부터 선박 인도 일정 재협의 요청이 들어왔다. 호르무즈에서 7,000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의 일상이, 한 시간 만에 바뀌기 시작했다.

호르무즈가 멈추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었다. 교과서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2026년 4월의 현실이었다.


세계 에너지의 목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수로다. 그 너비는 가장 좁은 곳에서 39킬로미터, 항행 가능한 구역은 3킬로미터씩 두 줄이다.

하루에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LNG의 양은 전 세계 해상 에너지 무역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한다.

숫자로 말하면 이렇다.


▸ 원유: 하루 약 1,800만 배럴 통과 (2025년 기준, EIA)

▸ LNG: 전 세계 LNG 무역량의 약 30퍼센트 경유

▸ 국가별 의존도: 일본 수입 원유의 90%, 한국의 70%, 중국의 45% 이상


이 해협이 봉쇄되면, 일본은 전략 비축유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약 90일이다. 한국도 비슷하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그보다 짧다. 90일. 그 숫자가 타이머처럼 돌아가기 시작하면, 외교의 언어가 바뀐다. 협력이 아니라 생존이 대화의 주제가 된다. 90일 안에 대안 공급망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 이후는 산술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 된다.

호르무즈는 에너지의 목이다. 목을 조이면 몸 전체가 멈춘다. 그런데 그 목을 조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 하나다. 고립된 나라가 세계 에너지의 목을 쥐고 있다는 역설. 그 역설이 호르무즈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수로로 만든다.


정상화는 오지 않았다

2024년 말, 많은 분석가들이 호르무즈 긴장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2025년 초, 같은 분석가들이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2025년 중반, 그들은 '제한적 충돌 가능성'을 경고했다. 2026년 4월, 기뢰가 발견됐다.

정상화는 오지 않았다.

분석가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각 시점에서 그들의 판단은 당시의 정보를 기반으로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합리적 분석이 구조적 변화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별 사건의 확률을 계산하는 것과, 사건들이 수렴하는 방향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2024년의 후티 반군 홍해 공격,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가속, 중동 전역의 블록 재편.

각각은 독립된 사건이었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너지 통로가 정치의 도구가 되는 방향. 그 방향을 읽지 못한 것이, 분석의 실패였다.

이것은 개별 사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2026년 4월로부터 훨씬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계화의 설계도와 그 균열

1944년 여름,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의 한 산악 호텔에 44개국 대표단이 모였다. 그들이 설계한 것은 전후 세계 경제 질서였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미국을 보증인으로,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그 설계는 이후 80년간 작동했다.

세계 무역은 8배로 성장했고, 수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80년 동안, 그 설계의 균열이 쌓였다.

균열은 세 방향에서 왔다.


첫째, 연결의 불평등. 세계화는 모든 나라를 평등하게 연결하지 않았다. 생산은 주변부로, 이익은 중심부로. 디트로이트의 공장이 문을 닫는 동안 선전의 공장이 문을 열었다. 세계화는 파이를 키웠지만, 파이의 분배는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강화했다. 그 불균형이 트럼프를, 브렉시트를, 노란 조끼를 만들었다.


둘째, 효율의 취약성. 공급망이 극도로 최적화될수록, 충격에 더 취약해졌다. 재고 없이, 여분 없이, 대안 없이 작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 코로나에 무너졌다. 마스크가 없었고, 반도체가 없었고, 배가 수에즈에 끼었다. 효율의 극한은 취약성의 극한이었다.


셋째, 에너지의 지리학. 에너지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는 특정 지역에 묶여 있고, 그것을 둘러싼 지정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로 썼고, 서방이 달러를 무기로 썼고, 이란이 호르무즈를 무기로 쓰고 있다. 에너지는 연료가 아니다. 에너지는 지정학이다.

그 세 가지 균열이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 2020년대였다.


이 책이 보는 것

이 책은 세계의 붕괴를 말하지 않는다. 세계화가 끝났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책이 보는 것은 재편이다. 기존의 연결 구조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짜이는 과정. 그 재편의 중심에 유라시아가 있다.

왜 유라시아인가. 세계 인구의 약 70퍼센트가 유라시아에 산다. 세계 GDP의 약 60퍼센트가 유라시아에서 생산된다. 세계 에너지 매장량의 대부분이 유라시아에 묻혀 있다. 세계 제조업의 절반 이상이 유라시아에서 돌아간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철강, 조선. 현대 문명을 유지하는 핵심 산업들이 유라시아에 집중돼 있다. 해양 패권이 지배한 500년이 끝나고, 대륙의 논리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면, 유라시아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가 된다.


판게아는 하나의 메타포다.

흩어졌던 대륙들이 에너지, 기술, 자본, 생산의 논리에 따라 다시 결합하는 방향.

그것이 선언되거나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어떤 나라도 '판게아를 만들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국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 결합의 방향이 나타나고 있다. 판게아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내는 필연이다.

이미 시작됐다.

그 시작의 증거를, 이 책은 추적한다.


1부에서 기존 세계가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고, 2부에서 그 무너짐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보고, 3부에서 무너짐의 잔해 위에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 4부와 5부에서 그 조건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보고, 6부에서 그 수렴 이후의 세계를 진단한다.

그 여정의 출발점이, 호르무즈다.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르게 짜이기 시작했다." ― 박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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