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항상성 (下)

타의적으로든, 자의적으로든 배움이 당연시될 수밖에 없게 된 계기

by 찐빵

..며칠이나 지났을까.

묻고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마냥 외면하는 건 불가능했다. 세월의 족적은 마음속 상처에 새겨졌으며, 머지않아 행동에, 정신에, 성격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바빴어야만 했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향성도 뚜렷하지 않은 노력이 유지될 리 만무했다. 언제까지고 오지도 않을 미래와 멀게만 느껴지는 행복을 바라보면서 무작정 달려가겠는가. 그건 이미 고등학교 시절 때 진저리날 정도로 많이 했다. 물론 그때 바라봤던 행복이 우습게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었기에, 전부 부질없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던 겨울방학이었다.

여느 때처럼 친구와 게임을 하던 날이었는데, 느닷없이 어떤 링크가 하나 날아왔다.

블로그였다. 들어가 보니 직접 칵테일을 제조한 후기가 나와 있었다. 얘가 이런 것도 했나? 암만 봐도 글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심지어 잘 썼다. 신선한 소재와 필력 덕분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재미있는 성격이 한몫했을지도).


다 읽고 난 뒤 친구는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블로그 해 볼 생각 없어?"


글이라.

지금에야 취미일 정도로 푹 빠져있는 작문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런 내 모습을 상상조차 못 했다. 여태껏 글이랍시고 썼던 거는 '학교 제출용' 독후감(으. 읽다가 노이로제 걸릴 뻔한 고리타분한 책들이 전부였다), 논설문, 리포트, 그리고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준 '어둠의' 일기가 전부였으니까(몇 개월 후 읽어본 후의 감상평은, "잔인한 현실에 한이 서린 불안정한 자아가 속절없이 드러났다" 정도로 해두겠다).


뭐 시도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지만—여느 초심자가 으레 그렇듯—막막하기만 했다. 첫 글'과 '자유 주제'라는 단어에 압도되어 선뜻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이다. 누구에게 쓰지? 뭘 쓰지? 어떻게 쓰지? 어렵사리 한 마디를 쓰다가도 아니다 싶어서 쓰고 지우고를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운이 좋게도,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짜낸 결과 한 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자문자답을 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그저 흘려보내는 게 아쉬웠다. 되짚어보면 '메모 정도는 해둬야겠다'싶은 마음의 소리들이 뭉게뭉게 불어날 때마다 그랬다.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더 줬더라면 충분히 마무리지을 법했는데. 더는 찝찝하게 흘려보내지 않아도 됐는데.

글을 쓴다면 그런 후회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반전미에 매료되었다. 대화로는 단순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글로써는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자신조차도 모르는 내면을 글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 블로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작문의 최대 이점 중 하나는 과거, 현재, 미래를 구체화시키면서 자아 또한 뚜렷하게 확립해 간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쓰다 보면 적어도 한 가지 교훈 정도는 배울 수 있었다. 연관된 가설들은 이를 뿌리 삼아 무성히 가지를 뻗어나갔다. 탐험가의 정신이랄까. 지도를 보면서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군침 흘리며 탐했던 그 정신이 내겐 깃들어있었다.


우울증도 많이 완화됐다.

꽉 막힌 어둠 속에 갇히면 더듬더듬 거리다, 이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탈출할 노력조차 차츰 관두게 된다.

그런 와중 적어 내려 갔던 글 한 편 한 편은 내겐 하루를 살아가는 희망이었고,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는 구석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을 때마다, 진척도를 쌓아 올리듯 어제보다 나은 나 자신이 보였다. 평생토록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우울이라는 동반자를 그제야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통을 버거워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점이라면, 글은 이를 매개로 '담금질'을 가능케 해주었다. 고통이 많을수록 담금질이 잦아지고, 담금질이 잦을수록 마음은 굳건해진다.

남들에 비해 성숙해지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빠른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내 인생은 상처 투성이었으니까. 트라우마 하나하나를 직면할 때마다 이성에 뇌가 절여졌고, 이내 나 자체가 되기까지 이르렀다. 보이고 만지는 모든 것의 사실 여부, 옳고 그름, 인과를 따지면,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작은 사실을 캐낼 수 있었다. 마치 거인이 되어 한층 다른 차원의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탄탄한 괴짜력의 토대는 여기에서 기인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단지 다르게 살아야만 하는 숙명이 생겼고—다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던 것뿐이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공허함이었다. 어느 하나를 마무리하고 나면 늘 목표의 부재가 생겼다. 어제의 내가 의미 없는 하루를 걱정하다가 노파심에 세워놓은 인스턴트 목표들.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고 어떤 책을 읽고 블로그에는 어떤 글을 쓰자.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해치우기 바빴다.

그러고는 길을 잃었다. 이래서야 남들의 의견을 따라가면서 진로라고 우겼던 고등학생 시절에서 바뀐 게 없었다.


비만과 정상을 왔다 갔다 했을 적,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게시글을 봤다.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청춘이라는 최고의 시기를 최고의 모습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 낭만 섞인 설득을 하고 있었다. 난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휴대폰으로부터 떼어졌던 기숙사 생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난 컴퓨터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중 하나였다. 친목다지기 활동은 컴퓨터 게임이 중심이었고, 절반 이상이 롤을 했으니까. 그런 유행을 따라가야만 했다. 닫힌 사회에서의 소외감은 실로 상당한 공포였으니까. 난 그래서 롤을 시작했다.


그래. 이런 게 모두 충동적이고 단기적이라는 거다.


이어지는 질문에는 전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다음은?


인생의 목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건, 내 인생에만 없는 듯했다.

항상 궁금했다. 내 꿈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모습은 무엇이었는가.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해낼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위. 살아가면서 한평생 바라볼 수 있는 일생일대의 숙명 말이다. (적어도 일개 회사원이 되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기왕 죽을 거 화끈하게 죽어야지,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갈거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고민 끝에 알게 된 것 하나가 있다. 난 힘을 얻고 싶었다.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슈퍼 히어로가 되어 막강한 힘을 얻으면 어떨까. 과시하기도 하고, 세상이라는 속박으로부터 탈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세가 손짓 하나로 바다를 가르듯, 몸짓 하나하나에 일렁이는 '파도'를 만드는 건 언뜻 봐도 짜릿해 보였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꿈을 그저 '환상'으로 치부하는 이유는, 이루어지기 힘들어서. 유치하다고 치부할 것만 같아서. 놀랍게도 그게 유일한 이유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그렇게 되고 싶으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면 될 일이다.


물론 세상만사가 곧이곧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평범한 삶을 살기에는, 첫째. 이미 늦은 감이 있고, 둘째. 여태 지내왔던 시간이 너무 형편없어서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듣기 싫었다. 그만큼 의미가 있게 만들려면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야만 했다.


결정적으로, 그런 삶이 싫었다. 누군가의 개가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따위의 삶을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 최고의 꿈에는, 최고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뛴다. 부단하게.




이렇듯 인생을 성장으로 써내려 왔던 나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다.


성장은 항상성이 될 수 없다. 아니, 항상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성장은 목표를 이루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대박 아니면 쪽박. 성장으로'만' 구성된 삶은 그럴 수밖에 없다.

때론 그런 생각이 든다. 죽는 마지막 순간마저도, 만족할 수 없는 걸까. 여기서 얻는 행복이 결국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안정된 일상과 영구적 행복이라는 말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왜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지도 알 것만 같다. 결국 단편적인 성취를 바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목표에서 손을 떼야만 하는 순간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여태까지의 수고가 헛된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인고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이해하기 위한 발판이었을 뿐이다. 노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언젠간 결과는 더 크게 돌아오게 돼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닌 수많은 선배들이 증명해 왔기에 난 더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거머쥐는 열반에 다다랐을 때,


인생이라는 책은 비로소 성장으로 매듭지어질 것이다.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성장: 항상성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