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라는 친밀함과 관리자로서의 지적 사이의 균열

<직장인의 심리노트 #12 | 관리자 Part 2>

by 여의도겨울바람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과장, 차장, 책임 정도의 직급이 되면

후배들과 비교적 가깝게 소통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결과물을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손을 대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팀장처럼 멀리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아니라,

후배가 쓴 보고서의 문장을 매만지고, 논리의 허점을 짚어내야 한다.

문제는 바로 그 ‘일의 결을 맞추는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심리적 균열이다.


저녁 퇴근길에 함께 맥주 한 잔을 나누며,

“팀장님은 왜 저러실까?”라며 함께 험담도 하면서 웃고 넘겼던 후배가 있었다.

눈빛만 봐도 통한다고 믿었고, 그 유대감이 우리 팀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후배가 가져온 보고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논리는 듬성듬성하고, 수치에는 크고 작은 오류가 눈에 띈다.

이 순간, 관리자의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건 망설임이다.

‘여기까지 손을 대면 어제의 분위기가 깨지지 않을까?’

‘괜히 깐깐한 선배로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실무자 시절에는 내 일만 완벽히 처리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타인의 결과물을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을 짚어야 한다.

좋은 선배로 남고 싶은 마음과, 관리자로서 져야 할 책임이 충돌하면서

말은 점점 둥글어지고 지적은 애매해진다.

“고생했는데, 조금만 더 다듬어볼까?”라는 식의 애매한 말로 본질을 흐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배려는 대개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내가 적당히 넘긴 결과물이 팀장이나 임원 앞에서 지적을 받게 되면,

결국 그 화살은 후배에게 더 아프게 돌아간다.

그때 후배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친하고 좋은 선배가 아니라,

나의 부족함과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주지 않은 관리자로 남게 된다.

친밀함에 취해 업무의 선을 명확히 긋지 못한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하다.


이 균열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적인 거리 두기에 대한 심리적 적응이다.

일의 결을 다듬는 과정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공동의 연마라는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후배가 상처받을까 망설이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사실 ‘나도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관리자의 역할은 그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불편해질 수는 있지만, 더 큰 실패를 대신 막아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직접 손을 대고 고쳐주는 과정의 어색함은

관리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겪는 피할 수 없는 통증에 가깝다.

어제 술자리에서의 ‘형, 누나’와

오늘 사무실에서의 ‘과장, 차장’ 사이의 온도 차를 견뎌내야 한다.

그 차이를 애써 부정하고 계속 친밀함만 유지하려 든다면,

조직의 성과는 물론 후배의 성장도 함께 흔들리기 쉽다.


내 지적으로 서먹해진 후배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내가 개인 플레이어에서 관리자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좋은 관계란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 상태임을 믿어야 한다.

선배라는 친밀함을 잠시 내려놓고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조직 안에서 한 단계 높은 책임을 배우게 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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