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심리노트 #11 | 관리자 Part 1>
실무자 시절, 일을 잘한다는 평가 기준은 명확했다.
내게 주어진 업무를 얼마나 완벽하고 빠르게 처리하느냐가 곧 나의 가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만의 방식대로 처리해서 최상의 결과물을 내놓으면 되었고,
그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성과였다.
하지만 관리자가 되고 나서 마주한 환경은 달라졌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내 손을 떠난 일들의 속도와 수준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이 느리다는 점보다, 내가 개입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더 힘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실무를 잘하는 것과 관리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라는 것을.
Global ERP 구축 프로젝트 PM 조직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전사적인 프로세스를 하나로 통합하고 표준화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큰 벽을 마주했다.
다양한 사업, 관리, 지원 영역마다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수준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영역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앞서가고 있었지만,
어떤 영역은 기초족인 데이터 정리조차 버거워하며 한참을 뒤처져 있었다.
실무자 시절의 관성대로라면,
뒤처진 곳을 내가 직접 파고들어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우수한 영역의 수준을 낮출 수도 없었고,
부족한 영역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쪽만 바라보면 다른 쪽이 쉽게 어긋났다.
실무자였을 때는 내 영역만 잘하면 됐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가장 빠른 결과를 만들어내면 됐다.
하지만 관리자가 되고 나서 더 필요해진 것은
최고의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와 수준을 조율하는 일이었다.
실무자의 유능함이 날카로운 전문성이었다면,
관리자의 유능함은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관리자는 자주 이런 장면 앞에 서게 된다.
내가 하면 금방 끝날 일을
굳이 맡기고, 그 시간이 길어지는 걸 끝까지 지켜보는 상황.
그때마다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계산이 돌아간다.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지금은 맡겨야 한다'는 판단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내가 직접 하지 않음으로써 느껴지는 불안감.
내 손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없다는 사실에 느껴지는 공허함.
관리자가 되면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심리적 어려움이다.
처음 맡아본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잘하던 방식이 더 이상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무의 유능함은 관리의 유능함으로 그대로 옮겨지지 않는다.
관리자가 되면 더 큰 권한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관리 초입에서 느끼는 감각은 권한의 확대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책임에 더 가깝다.
내가 직접 하면 한 시간 만에 끝날 일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실무자가 관리자로 넘어가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훈련의 시간이다.
기다림과 조율을 새로 배우는 과정을 지나며,
비로소 나만의 성과가 아니라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자리에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