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평범했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대출 이자에 허덕일 필요 없는
우리만의 안락한 집에서 안정적으로 맞벌이하며
아이 하나 키우는 삶. 만족스러웠다.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아이가 어린이집 다닌 지 일 년이 되어갈 때였을까.
우리는 임신, 출산부터 아이가 돌잡이 할 때까지 일하지 않고 양육에 힘썼다. 그만큼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부족했기에, 소비를 최대한 줄여 아이를 우리 품에서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 과정을 시부모님께서 적극 응원해 주셨고 다른 가족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 내가 먼저 일을 다녔다.
그 후 7개월 뒤 남편도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맞벌이를 하니 통장에 쌓이는 돈이 빠르게 늘어갔다.
월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은 마음에 여유도 생기게 했다.
하지만 아이와의 시간은 돈과 정반대였다.
일을 시작하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고, 우리의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도 오전 7시 30분에 어린이집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나의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30분으로, 내가 남편보다 빨랐다. 그럼 갓 돌이 지난 우리 딸은 꼼짝없이 오전 7시 30분부터 최소 오후 6시까지 어린이집에 있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시부모님이 일을 다니셨지만 퇴근이 오후 4시였다. 시부모님께 별 일이 없는 날이면 아이는 4시 30분에 하원할 수 있었다.
아침잠 많은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아이 얼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아침 1시간, 저녁 3시간. 하루 24시간 중 길어야 4시간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퇴근시간이 더 늦었기에 남편이 아이 얼굴 보는 시간은 더 적었다.
퇴근하고 정신없이 아이 씻기고, 요리해서 저녁 먹이고, 재우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깜깜한 방에 나도 침대에 몸을 뉘었던 어느 날,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어느 날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생각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다.
처음으로 불행하다 느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도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남들 다 이렇게 사는데 우리만 유난인가 싶기도 했다. 당장 뭘 해보기엔 겁도 났다.
그래서 그냥 불행한 돈을 모으며, 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휴가 기간이 맞아 제주도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이는 그곳이 제주든, 어디든 상관없이 엄마아빠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행복해 보였다. 오렌지색으로 물든 바다에서 뛰노는 딸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고 우리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어진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고,
우리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우리만의 삶.
그런 삶이 살고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우린 동시에 휴직 절차를 밟았다.
휴직에 큰 결심이 필요했던 만큼 보상은 확실했다.
아침잠 많은 아이를 깨우지 않고 푹 자게 둘 수 있는 여유.
어린이집 땡땡이치고 어디든 놀러 가는 일탈.
아이와 함께 오후 4시부터 요리해서 5시에 먹는 저녁식사.
아이가 충분히 소화할 때까지 함께 놀고 재울 수 있는 밤.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는 하루.
분명 행복했던,
더할 나위 없던 그 순간에,
딸에게 병원 캠핑 가자고 말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