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넌 꿈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고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예림만 몰랐다. 그들에게 예림은 한 편의 기분 나쁜 연극이었다. 막이 내려도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바닥에 밧줄과 온갖 날붙이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무대 위 송예림이 연장 하나를 주워 들기를 기다렸다. 나는 음란한 무언가가 아닌 괴로움으로 짓눌린 인간이라는, 송예림의 적나라한 증명을 고대했다. 기대에 힘입어 예림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옥상에 있었다. 느릿한 발걸음은 어느새 경쾌한 춤으로 변했다. 예림은 단숨에 층계를 올라갔다. 아이들이 원하는 가련한 역할을 기꺼이 맡고 싶었다. 진짜 피해자가 되고 싶었다.
무대 위 조명이 꺼지고 예림의 도약은 끝났다. 예림은 자신을 가로막은 우람한 체격의 소년을 우러러보았다. 과학실에 있었던, 꼴도 보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다. 호신용품 하나 없는 처지를 탓하며 예림은 난간을 붙잡았다. 차디찬 온도에 의지하며 예림은 한 계단, 두 계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산만 한 덩치를 밀쳐낸들 순순히 나가떨어져 주지 않으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결국 무슨 말이든 건넬 수밖에 없었다.
“…너도 내 탓을 하러 온 거야? 내가 지수열을 골로 보낸 거나 다름없다고?”
불시착한 외계인을 보기라도 한 듯 넋 나간 소년의 얼굴에 곧 놀라움이 번졌다. 예림은 할 수만 있다면 소년을 다른 공간으로 치워버리고 싶었다. 소년의 얼간이처럼 벌어진 입과 크게 떠도 흐리멍덩한 두 눈이 볼썽사나웠다.
“아니? 지수열이 깨어나든 이대로 식물인간이 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그럼 비켜.”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예림은 게걸음을 쳤다. 소년을 빙 돌아 계단을 마저 오를 심산이었다. 그러나 금방 소년에게 손목을 붙들리고 말았다.
“네가 괜찮은지 보러 온 거야.”
처음이었다. 과학실 사건 이후로 자신의 안위를 살피는 아이가. 예림은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맞닿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미열에 치가 떨렸다.
“가던 길 막지 말고 꺼져.”
“내 말을 들어줘.”
예림은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소년은 약간의 힘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 점이 예림의 화를 돋웠다. 손목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난 협박 당해왔어. 작년에 지수열이 날 폭행하던 걸 너도 봤었잖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던 희멀건 덩어리가 눈앞의 덩치였다는 사실은 등급을 매길 수준도 못 되는 처참한 첫인상을 조금도 개선해 주지 않았다. 예림은 소년의 모든 점이 싫었다. 저 얄궂은 눈초리와 여유 넘치는 입꼬리가 특히 기분 나빴다. 예림은 눈꺼풀을 내렸다. 힘으로도 안 되면 그가 놓아줄 때까지 말 한마디도 섞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동안 너를 좋아했어. 지금도 그래.”
예림은 얼이 빠진 얼굴로 소년을 응시했다. 그의 입을 닥치게 할 자신이 없었지만, 그가 지껄이는 소리를 더 들어줄 자신도 없었다. 소년은 기다렸다는 듯 예림의 손을 놓아주었고, 예림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소년을 밀쳤다. 소년은 기꺼이 떠밀려 계단 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난 네 이름도 몰라. 모른다고!”
예림이 절규하자 소년이 활짝 웃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명찰을 꺼내 예림의 손에 쥐여주었다. 언제 시작했는지 모를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예림은 원표은이란 이름 석 자를 주저 없이 던져버렸다. 느닷없이 현기증이 일었다. 예림의 두 발이 계단 위에서 휘청거렸다. 원표은에게 다시 붙잡힌 덕분에 예림은 굴러떨어지는 참사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의 손길에 이끌린 예림의 두 무릎이 살포시 계단에 닿았다. 예림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했다.
“너 지수열에게 일부러 맞아 줬구나. 이거 변태 새끼 아냐?”
원표은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애정이 담긴 듯한 눈빛에 예림은 몸서리쳤다.
“날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
송예림이 목을 조르기 시작했을 때, 표은은 평온한 상태였다. 지수열에게 거의 1년 동안 폭행당해 온 경력에 비하면 송예림의 교살 시도는 깜찍한 수준이었다. 악력이라곤 전혀 없는 주제에 대단한 힘깨나 쓴다는 듯 구는 꼴이 잠깐은 재미있기도 했다. 이내 지루해진 표은은 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길쭉한 나뭇가지 같은 여자애가 더 돌아버리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감이 오질 않아 적당히 괴로운 척 연기해 주기로 했다. 표은은 떠오른 선율을 따라 두 발을 까딱거렸다. 자신의 고백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이로써 송예림이 신고할 가능성은 더더욱 줄어들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네가 어떤 미친놈인지 폭로할 거야.”
표은은 송예림의 양손을 가뿐하게 떼어 냈다. 송예림이 기꺼이 자살하겠다면 환영할 일이었지만, 그가 옥상에서 투신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도 식상해서, 되려 보기 흉한 그림이 될 터였다.
“그러지 못할 텐데.”
이 조잡하기 짝이 없는 조우에서 표은이 처음으로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두 손을 붙잡힌 예림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말했잖아? 네 발로 과학실에 들어온 이상, 넌 이미 죽은 거라고.”
원표은은 끔찍할 정도로 부드러운 눈빛을 했다. 그는 예림을 끌고 층계를 내려와 중앙 현관을 향해 뛰었다. 계절감을 상실한 함박눈은 3월 말의 운동장을 새하얀 설원으로 변모시켰다. 내리쬐는 햇살은 기이하게도 따스해서 곧장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힐 기세였다. 어째서인지 예림의 눈에는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이 흐르는 윤슬을 움켜쥐려는 갓난아이처럼 보였다. 원표은은 다른 심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가 팔을 쳐들었다. 예림의 팔이 그를 따라 새순처럼 솟았다. 예림의 몸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작년 체육 시간, 무용을 배우며 익힌 안무였다. 원표은의 웃음소리가 멎자 교사들이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참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원표은이 새 무대로 예림의 등을 팍 떠밀었다. 그럴싸한 속삭임도 잊지 않았다.
“여왕개미가 없어지면, 남은 개미들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눈밭에 발자국을 찍은 순간, 예림의 얼굴에 눈 뭉치가 날아왔다. 지척에 있던 아이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몇몇 아이들이 눈싸움을 멈추고 찜찜한 기색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지수열이 흘렸던 것처럼, 쉬는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피가 예림의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이번엔 어떤 아이가 고의로 예림의 가슴팍을 맞췄다. 눈덩이가 마치 심장이 터지듯 얼음 파편이 되어 후드득 흩어졌다. 그 아이는 눈을 또 뭉치며 잔뜩 고양된 목소리로 아까 교실에서 일어난 소동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분노는 순식간에 운동장 위로 퍼졌다. 예림은 하나둘 날아오는 눈을 맞았다. 눈 뭉치는 몸에 닿자마자 또 다른 설경(雪景)이 되었다. 베일 같은 눈보라 속에 삼켜지니, 한층 눈부시게 개화한 유명세를 더더욱 실감하였다.
예림의 이가 딱딱 맞부딪쳤다. 허리는 점점 수그러졌다. 원표은, 저 새끼는 내가 여왕개미씩이나 된다고 지껄인 거야? 자신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끊임없이 옷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눈을 털어내기에도 급급한 생물이었다. 예림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인제 자기 몸이 눈밭에 처박힌 건지 불구덩이에서 타는 건지 헷갈렸다. 눈인지 불꽃인지 모를 것을 움켜쥐며 예림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의 손이 함박눈처럼 쏟아졌다. 예림을 붙든 손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이들이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거대한 생물에 달린 수많은 발에 불과한 것 같았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은 극히 사소한 일로 남을 거라고, 예림은 직감했다. 이 아이들도 돌아서면 전부 잊을 테니 말이었다. 예림의 눈길이 절로 하늘을 향했다.
어떤 면에서 원표은의 비유는 그럴싸했다. 일개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쓸모없거나 눈 밖에 난다면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자신은 여왕개미와 비슷했다. 예림은 자못 침착한 태도로 성난 아이들을 관찰했다. 자신에게 모욕을 주는 아이들은 평범했다. 지극히 결연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벌이는 작태가 정의의 실천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면 멀쩡한 소년의 인생을 망친 송예림이란 인간은 수치심조차 모르는 낯짝을 가졌으니까. 그런 악녀는 대중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아이들은 분노하기 위해 애썼다. 숲속에서 맞닥뜨린 늑대 같은 공포를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저항 한 번 않는 악과 악을 해체하는 정의로운 선이 전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가장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정당했다. 그들의 분노는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지는 눈 뭉치였다.
예림은 손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석고상처럼 변해버린 몸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얼음장 같던 감각과 감정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눈이 그치고, 이내 선명하기 그지없는 색이 세상을 덮은 불투명한 베일을 걷어냈다. 이 세상은 아마 누군가가 한창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내고 있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단지 온갖 색상의 페인트를 쏟아붓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자신의 얼굴과 아이들의 정수리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운동장은 새하얀 도화지였다. 아이들의 정수리는 붓으로 뿌린 물감이나 먹이를 잘라 운반하려는 개미 떼처럼 보였다. 예림은 그 양태를 관조했다. 미미한 움직임 사이로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저 개체는 자신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먹이였다. 좋게 봐줘야 누군가의 피사체였다. 예상치 못한 그 발견은 마침 적절한 때 찾아온, 꿈결 같은 망각이 되었다. 예림은 땅으로 내려오기 싫었다. 저들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뒤늦게 달려온 교사들이 아이들을 헤치고 예림을 끌어냈다. 한 교사가 예림에게 담요를 둘러 주었다. 그 까끌까끌한 감촉에 예림은 마지못해 지면으로 내려와야 했다. 어른들은 아연실색하며 아이들을 추궁했다. 아이들은 어깨를 들먹였다. 그저 정도가 좀 과한 장난이었다고 변명했다. 한 아이가 걸어 나와 예림을 일으켜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네가 제일 잘하는 짓을 하라고 속삭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림은 빙그레 웃었다.
그때,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진원지는 등나무였다. 그 아래 김세지가 서 있었다. 예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여전히 부유하고 있기라도 할 걸까? 김세지가 자신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이 퍽 생경했다. 조금 전 자습 시간에 비하면 이 일은 나쁘다고만 볼 수 없었다.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예림은 적어도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원표은의 말처럼 자신이 일찌감치 죽어버린 게 맞을지도 몰랐다. 엉망진창이 된 예림을 더는 보기 힘들었는지 김세지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대로 운동장을 달려 건물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교사들은 김세지의 비명 따위는 처음부터 들리지 않았다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했고, 아이들은 김세지를 비웃기에 바빴다.
그 무신경함 속에서 예림만이 김세지가 서 있었던 장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등나무 아래 서 있던 그 아이는, 이 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모든 감정을 소진한 예림은 김세지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구슬피 울던 얼굴만은 주머니에 감추고 그 감촉을 알아가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다음 화]
왜 너는, 나를 보고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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