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국민학교 졸업식은 며칠 전부터 눈이 쌓여 길바닥은 빙판길이 되어 차도 다니기 쉽지 않았다. 달리다가 바퀴가 빙그르르 돌아 사고가 나기도 했고 바퀴에 체인을 걸어 달린다지만 워낙 많은 눈이 내리고 쌓이고 얼고를 반복했기 때문에 달리다가 헛바퀴가 돌아 위험에 처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걷다가도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건 다반사였고 얼어 있는 길은 흉기가 되어 차나 사람들을 위협했다. 눈을 좋아하는 건 종일 이리저리 뛰고 뒹굴고 엉켜서 뛰노는 동네 개들뿐이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엄마와 단둘이 삼거리 점방 앞 정류장에 서 있었다. 눈이 많이 쌓여서인지 이미 도착했어야 할 버스는 오지 않고 기다리는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사고가 났나, 눈 때문에 버스가 운행을 안 하나, 혼자서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펴며 애타고 있을 때 멀리 집골목에서 넷째 오빠가 절뚝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 손으로 허벅지를 짚고 절뚝이며 걸어 나오는 모습이 누가 뭐래도 오빠였다. 눈이 내리기 오일 전 방학이라 내려와 동네 암자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오빠는 내 졸업식은 꼭 보고 싶다는 이유로 산을 내려왔다. 아버지는 공부나 하지 씨잘데기없이 내려왔다고 못마땅해했고 나는 내심 좋았으나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고 몇 날을 폭풍우 몰아치듯 쏟아질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도록 내렸다가 언 눈 위에 또 눈이 내려 그야말로 하얗게 꽁꽁 얼어 눈의 세상이 되었다.
겨울 햇살에 반사되어 빛을 내며 반짝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은 자잘하게 쓸려 갔고 그 쓸려간 자리에 바람을 타고 또 다른 눈이 내려앉았다. 간혹 바람을 타고 쓸려가던 눈은 엄마의 가지 빛 두루마기에 작디작은 흉터를 남겼고 제 집인 양 정착하듯 내 머리카락 사이로도 몰래 스며 들었다. 정류장 앞에 있는 집이 눈 쌓인 땅과 맞닿은 눈 덮인 낮은 지붕의 눈을 쓸어 내고 있었기에 눈은 바람을 따라 우리가 서 있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간간이 내리고 있었다. 살짝 볼에 스치다 녹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눈이 많이 온 날은 그 무게로 지붕이 무너질까 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빗자루로 눈을 쓸었다. 눈끼리 얼어붙어 빗자루로 쓸리지 않을 때는 삽으로 푹푹 퍼내야 했기에 익숙한 풍경인데도 한참을 바라봤다. 이렇게 눈이 쌓인 날 집에 있을 때라면 나는 동네 애들과 반들거리는 빙판길에서 썰매를 타거나 비료포대를 들고 언덕으로 올라가 눈썰매를 타며 놀았을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집에 들어와 아궁이에 젖은 신발을 올려두고 펄펄 끓는 아랫목에 앉아 엄마가 쪄둔 뜨끈한 고구마를 먹고 있을 텐데 그 모든 것들이 아쉽지 않았다. 몇 날을 설레며 졸업식만 기다리고 있던 터라 빨리 학교에 도착하고 싶었다.
눈을 밟으며 제자리걸음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눈을 모아 작은 언덕을 만들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더디 오고 도대체 버스가 어디쯤에 오는지 머리를 쭈욱 내밀고 우리 집 쪽 길을 향해 바라보는데 넷째 오빠가 걸어 나오다 빙판길에서 넘어졌다. "아이고" 엄마의 작은 탄식에 나는 너무 놀라 오빠가 넘어진 집 길목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길이 미끄러워 몇 번이나 넘어질 것처럼 곡예를 해야 했다. "미끄렁께 오지 말라고 혀야" 엄마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으나 대답할 새도 없이 뛰었다. 그렇잖아도 새벽부터 일어난 오빠에게 눈이 많이 왔으니 집에 있으라고 엄마는 신신당부했었다. 얼어있는 눈바닥을 짚고 일어나려고 몇 번 반복하다 다리 힘이 빠졌는지 주저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큰일이다. 얼지 않은 눈 쌓인 갓길을 찾아 누군가에게 쫓기듯 푹푹 빠지며 사납게 질주해서 온 힘을 다해 오빠 곁으로 왔을 때는 내 다리가 휘청였다. 잠시 숨을 몰아쉬고 오빠를 부축여 일어나 팔을 잡고 조심조심 골목길을 들어가 마루에 앉혔다. "서림이 너 졸업식은 꼭 가려고 했는데 못 가겠다" 오빠의 눈에 연약한 이슬방울이 맺혔고 그렁이는 눈빛은 자신의 불편한 다리를 향했다.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오빠였다. 다리가 불편해 많은 제약이 따라 불편할 만도 한데 어느 순간 모든 걸 달관한 듯이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갔다. 방학이면 시골로 내려와 절에 들어갔기에 주말마다 심부름을 다니며 누구보다 정이 든 오빠다. 국민학생인 내가 시를 써서 보여주면 앞으로 훌륭한 시인이 될 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문학 얘기를 곧잘 들려주는 오빠여서 이날만큼은 어린 마음에도 오빠가 안쓰러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길이 미끄렁게 집에 있어, 엄마랑 갔다 올랑 게" 씁쓸하게 웃음을 보이며 오빠에게 손을 흔들고 집을 나와 혹여 나 없는 사이 버스라도 올까 봐 엄마가 있는 삼거리 정류장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나보다 빠른 버스가 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빠의 비감에 젖은 눈빛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엄마의 눈은 좀 전 오빠의 눈보다 더 눅진하고 깊은 자줏빛 바다를 품고 있었다. 살짝 손대기라도 하면 금세 터질 듯 눈은 붉게 일렁였고 핏기 잃은 엄마의 얼굴이 너무 공허해서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 설핏 해가 기운 하늘처럼 그늘져 있는 엄마의 모습은 점점 움츠러들고 있었다. 집으로 틀어진 발길은 이러지도 못하고 몸은 그대로 얼어 몰래 곁눈질로 한 번씩 볼 때마다 엄마의 눈빛은 고요히 젖어들어 축축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엄마를 달래야 했지만 입안에서 말은 뱅뱅 돌았다. 내 마음은 일그러졌고 온기를 태워버린 선득한 바람이 수시로 부딪혀 눈이 시렸다. 혼자 이곳에 서서 잠시지만 얼마나 많은 남모를 고통을 퍼내고 있었을지,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무거운 공기는 눈보다 더 무겁게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척 눈을 발로 밟으며 뽀드득 소리를 냈다. 당신의 애처로운 아들이 빙판길에서 넘어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키우면서 한두 번 본 일도 아닐 테지만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시렸을지.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되고 그 일을 떠올렸을 때 가슴이 아려와 몰래 숨죽이고 울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아들이 들어간 자리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 앞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은 한숨에서 아픔이 읽혔고 흘리듯 뱉어내는 탄식에서 고통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아마비로 태어난 넷째 아들의 불편한 다리를 고치려 많은 분들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고치질 못했다. 태몽으로 송아지 다리 하나가 부러져 절뚝이는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들려줬다. 내 태몽이 궁금해 물었을 때 함께 들려준 얘기다. 평생 당신을 그 감옥 안에 가두고 아들의 불편한 다리에 묶여 있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엄마의 가슴은 녹아내렸다. "아이고" 탄식이 끊기지 않았고 "워메 어쩐데여" 애가 탔다. 나중에 치매가 온 엄마와 살면서 보니 몇 안 되는 말은 넷째 오빠에게 주로 쓰던 말이었다. 평생을 마음이라는 감옥 안에 살았으니 다 닳고 뻥 뚫려버린 그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당신을 잃어버린 시간 속에 여전히 가장 마음 아픈 자식이 누구도 모르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까.
그날의 졸업식이 원망스러웠다. 전날까지 들떠서 쉼 없이 재잘거렸던 나와는 달리 말이 없었다. 자꾸 복도에 있는 엄마를 살피게 됐고 엄마의 눈빛을 바라보느라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슬프게 하고 오빠를 아프게 한 졸업식이 날 울게 했다. 그날 엄마와 찍은 사진에는 둘 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가지 빛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엄마와 빨간색 셔츠에 보라색 점퍼를 입은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누구도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