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희망

by 서림

엄마는 생선 장사가 이골 난다는 말을 종종 했다. 넷째 오빠가 고시에 합격하면 갈고리를 집어던지고 삼거리 점방까지 깨복고 미친년처럼 뛰어다닌다는 말을 학교 다니는 내내 들어야 했다. 아마 엄마에게는 그때쯤 넷째 오빠가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 같다. 돈을 들인 만큼 번듯하게 성공한 자식이 없어 엄마는 그때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젊은 날에는 동네 계원들하고 놀러도 많이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마실 나가는 것도 잊은 채 들로 나가 시름을 달랬다.


날이 흐린 이른 저녁 어느 날 엄마는 택시를 불렀다. 주섬주섬 챙긴 나를 데리고 한 시간 거리의 시내 어느 골목에 있는 무당집으로 갔다.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것이다. 1차는 붙고 2차는 매번 떨어지는 오빠가 이번 고시는 합격을 할 것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난 처음 간 무당집이 무서워서 엄마 옆에 쥐 죽은 듯 앉아 있었다. 무당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엄마는 긴장은 했지만 여유를 잃지 않으려 웃어 보였다. 엄마가 실망하지 않게 제발 좋은 말이 나왔으면 혼자서 간절히 빌고 있었다. 평소 생선 장사가 이골이 났다는 말을, 넷째 오빠가 고시에 합격하면 갈고리를 집어던진다는 말을 수없이 했기에 넷째 오빠가 고시에 합격하면 엄마 고생은 끝난다는 생각을 했던 걸까. 무당의 입을 바라보며 제발 엄마 소원을 들어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나가서 장사로 고생하는 게 싫었다. 새벽이면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들에 나가던 엄마가 불안해 보여 따라가지 못한 날은 잠을 설쳤다. 또한 그때는 이미 시골 오일장도 예전 같지 않아 엄마의 신세 한탄이 늘어가던 시절이었다. 장날이면 아버지는 술로 시름을 달랬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푸념하는 날이 잦아졌다.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기운을 잃었는지 점점 말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주에 한의사는 들어와 있으나 판사나 검사는 안된다는 무당말에 엄마는 "아이고"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순간 사방이 써늘한 냉기가 흘렀고 조용해진 무당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오래된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누레지고 때가 탄 벽을 타고 째깍째깍 온 방을 울리고 있었다. 얼핏 바라본 엄마는 나라 잃은 슬픔의 살길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고, 좀전의 애써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엄마의 표정을 보고 무당은 못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연신 헛기침만 해댔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엄마는 조용히 일어섰고 몸은 휘청이고 있었다. 무겁게 눌린 공기는 우리를 에워싸고 섣불리 놓아주지 않았다. 고요한 방 안에서 흩어지는 시계 초침 소리와 외마디 비명처럼 짧게 뱉어낸 한숨소리가 섞이며 엄마를 휘감고 짓눌렀다. 몇 번을 주저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힘겹게 일어나 무당집을 빠져나왔다. 엄마는 넷째 오빠의 다리가 불편해 세상의 편견과 부딪혀 살아야 했기에 고시 합격에 더 집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의 불편한 다리를 볼 때마다 당신이 죄지은 듯 미안해하고 아파하며 탄식했다. 흐렸던 하늘은 이내 한두 방울의 비로 바뀌었고 챙겨온 우산을 폈다. 엄마의 한숨이 길게 내려 걸을 때마다 발목을 잡는 듯 무거웠다. 무당말이 다 맞는 건 아니나 엄마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꺾이는 순간이었다. 남은 당신의 인생을 무당에게 맡기기라도 한 듯,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빗소리에 뒤엉켜 슬픔까지 내렸다. 평생 생선 장사를 하면서 더 이상 기댈 곳도 희망도 없는 엄마의 풀 죽은 모습이 비에 젖어 들고 있었다. 빗방울은 굵어지고 있었고 느리고 무겁게 한 걸음씩 걷던 발걸음은 빨라졌다.


무당을 찾아올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절망하던 그날 밤은 내게도 시련의 밤이었다. 생선 장사가 이골난다는 엄마의 고생을 더 봐야 했기 때문이다. 찰방거리는 빗속을 걷는 엄마의 어깨는 오랜 침묵을 깬 사람처럼 천천히 느리게 움직였다. 바람이 불자 축 늘어진 소맷자락이 흐느적거렸다. 숨을 넘기며 꺼져가듯 작게 새어 나오는 울음은 깊이 젖었다. 몸이 울음에 실려 엄마의 어깨는 오래도록 출렁거렸고 서늘해진 어둠을 뚫고 우리는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집으로 온 엄마는 말이 없었다. 침묵보다 더 무거운 공기는 고요하게 내려앉아 인기척이 없었다. 몇 해 전 다친 다리에 찜질을 하고서야 엄마는 잠이 들었고 나는 늦도록 "아이고" 작은 한숨을 토해내던 엄마가 자꾸 떠올라 잠이 들지 않았다. 기대하는 좋은 말이라도 나올까 싶어 택시를 잡아타고 갔을 그날 밤은 밤새 비가 내렸고 엄마의 실낱같은 염원은 비에 쓸려갔다. 넷째 아들의 고시 합격이 마지막 희망이 아니었던가. 언젠가 집골목 앞 감나무에 수많은 까치떼가 우르르 날아들 때 한참을 바라보던 엄마는 "필시 길하고 상서로운 일일 것이네잉" 조용히 뱉어냈다. 그때 처음 본 엄마의 들떠있던 작은 웃음이 천장에서 떠다니다 이내 사라졌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엄마는 소아마비인 넷째 오빠를 업고 국민학교에 등교 시켰다는 이야기를 바람에 흘려보내듯 했다. 고집이 어찌나 센지 닭장 안에 가두었다는 얘기며, 훤칠하게 잘난 아들놈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당신 속은 다 문드러졌을 것이라고, 남 얘기하듯 무미건조하게 흘렸다. 오빠가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다리에 힘이 없을 오빠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었는지는 모르나,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났던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다닌 기억은 오빠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오빠의 한쪽 다리에 힘이 없어 페달을 밟을 때마다 힘없는 다리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팔 힘에 의해 다리를 구르면서 페달을 밟은 것이다.


장학금을 받고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닌 오빠의 주변 기대는 컸다. 이미 대학교 2학년 때부터 1차 합격이 있었을 때라 엄마의 희망이 제일 컸을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빠는 고향에 있는 작은 절에서 고시공부를 했다. 무당의 말에 잠시 절망은 했지만 엄마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해 시험도 역시 2차에서 떨어졌다. 2차에 떨어졌다는 소식에 엄마는 "아이고" 한숨을 쉬었고 잘 쓰지 않는 군데군데 녹이 슬고 얼룩진 놋그릇을 꺼내왔다. 복작대며 부딪히는 놋그릇에 파문일 듯 작은 굉음이 일었고,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헛헛한 숨소리만이 엄마의 입에서 가늘게 새어 나왔다. 모질고 사나운 바람의 무게가, 놋그릇을 닦느라 낮게 엎드린 엄마의 등을 빠르게 훑었다. 엎드린 엄마의 등이 무겁게 흔들리며 눈에서는 붉은 불꽃이 엉켜 팽팽해졌다. 나는 말없이 작두를 펌프질하며 물을 받았다. 엄마는 놋그릇을 닦으며 힘을 잃은 지푸라기는 옆에 던져두고, 새 지푸라기를 한 줌씩 집어 돌돌 말아 약간의 물과 흙을 묻혀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갔다. 얼마나 빠득빠득 밀어댔는지 그릇을 씻어 놓으니 번뜩이며 영롱한 광채가 났다. 그날 엄마는 온 신경을 놋그릇에 집중하고 있었다. 집은 고요했고 아버지의 술잔은 넘쳤고 엄마의 마음은 어디 기댈새도 없이 부서지고 으스러졌다. 깊은 수심 아래로 하나씩 무너져가던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 닻을 내리던 시절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자식들이 당신의 욕심만큼 성공하지 못해 의기소침하고 기가 죽었나 생각했다. 물론 당신이 돈 들인 만큼 번듯하게 성공한 자식이 없어 기도 죽고 우울증도 깊어갔으리라. 학창 시절 엄마와 아버지의 대화를 들어보면 보이지 않는 푸념들로 날을 새었으니. 내가 나이가 들고서야 그때 엄마의 의중을 알아챘다. 장성한 자식들은 많은데 당신들을 책임질 자식 하나 없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태껏 생선 갈고리를 들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체면치레를 잘했던 엄마에게 그보다 치명적은 것은 없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절망은 컸고 한때 젊은 날의 부유함이 때때로 숨죽이게 했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새벽이면 들로 나갔다. 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조차 창피하다는 말을 곧잘 하던 엄마였으니, 그 시절부터 엄마는 이미 자신을 당신의 세상에 가두고 있었다. 수술하고 혈관성 치매가 왔다지만 엄마의 치매는 예견된 일이었다. 대단히 성공한 건 아니지만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고 본인들 앞가림은 했으니 기가 죽거나 우울증이 올만큼은 아니었다. 생선 갈고리 하나에 엄마는 무너지고 있었고 마지막 희망을 잃었으며 살아갈 원동력을 잃었다. 그렇게 조금씩 엄마를 잃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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