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창고

by 서림

하얀 반창고는 저녁때가 되면 기웃기웃 때가 묻어 거무뎅뎅해졌다. 아랫목에 곱게 앉아 있거나 드러누워 일생을 호의호식한 적이 없으니 반창고 하나도 하얗고 반질반질한 날을 본 적이 없다. 겨울이면 엄마 손은 성한 데가 없었다. 날은 춥고 물 마를 날이 없어 손등은 트고 손톱 밑은 갈라지고 피가 나 항상 반창고로 돌돌 말아 손에 닿는 통증을 덜어야 했다. 엄마 손이 투박하다는 표현은 세련됐고 손이 거칠다고 말하기엔 너무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어쩌다 스치는 엄마의 손을 부딪히기라도 하면 까슬까슬 가시가 돋은 듯 연하디연한 내 살을 찔렀고, 수천 개의 쪼개어진 물비닐처럼 돋아난 상처는 날카롭게 속살들을 쪼아댔다. 엄마가 치매가 왔을 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놓고 자식들을 잃은 것은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이나 엄마에게도 봄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손을 닦아주고 향기 나는 로션을 발라주며 고등어 살처럼 보들보들해진 걸 태어나 처음 보았을 때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련했다. 귀한 물건 다루듯 조심조심 만져보고 얼굴에 비벼보며 벅찬 마음을 길고 오래 품었다. 우리 엄마 손이 이렇게 예뻤구나 감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신을 내려놓고서야 날아든 봄날을 어찌 좋아만 할 수 있었겠는가.


몸이 약한 아버지 대신 엄마는 들이나 장에서 더 많은 일을 했다. 들에서 무거운 것들은 엄마가 들어다 날라야 했고 장날엔 생선이 얼어 더 무거워진 하꼬짝을 들어 내리치며 언 생선을 산산조각 내듯 깼다. 내리쳐도 떨어지지 않은 생선은 갈고리로 하나씩 떼어내야 했는데, 익숙한 일이었지만 손마저 쩍쩍 얼어붙어 겹겹이 얼어 있는 생선을 떼기란 쉽지 않았다. 손가락을 내리쳐 멍이 들거나 살이 패여 피가 나기 일쑤였고 살이 갈라져 피가 뚝뚝 흘리는 날도 많았다. 장사하다 말고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으니 반창고로 돌돌 말고 버텼다. 그나마 장사가 잘되는 날은 돈이 벌리니 그것만으로도 여름 한철 뙤약볕을 막아주니 좋았고 모조리 뽑아버릴 듯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맵디매운 겨울 강풍도 봄날 미풍처럼 위안이 되어 웃을 수 있었다. 물 마를 날 없는 엄마의 손톱 밑은 겨우내 갈라지고 찢어져 애를 먹었다. 반창고를 붙이지 않으면 물 닿을 때마다 손이 쓰렸고 건조하고 얼어 있는 손이 물건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하는 날엔 살이 터져 피가 흘렀다. 그때마다 엄마는 반창고를 여러 겹 붙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닿으면 통증을 덜어주는 반창고가 어느새 엄마에게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었다. 시장 갈 때 가지고 다니던 작은 손가방에는 쓰다만 여러 개의 반창고가 있었다. 급하게 돌돌 말아 쓰고 남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손을 넣으면 제비뽑기하듯 하나씩 뽑혀 나와 손톱 끝에서 하얀 조팝꽃으로 피어났다. 간간이 붉게 물이 들어 붉은 꽃으로 하늘거리기도 했고 잿빛 하늘처럼 검게 흐려져 먹구름으로 피어날 때도 있었다. 하얀 조팝꽃으로 필 때마다 엄마의 손톱 끝 상처는 더 깊게 파고 들었고 깊이 적셨다. 그때마다 붉은 물이 든 조팝꽃은 울음을 눌렀다.


들에 나간들 달라질 건 없었다. 종일 땅에 절하고 손을 흙에 문질러대며 농사짓느라 굳은살이 밴 손톱 밑 살들이 터질 때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흙 묻은 몸뻬에 쓱쓱 닦아내거나 흙에 절은 장갑에 붉게 타드는 살을 돌돌 말아 숨겼다. 그 해 고추 농사가 풍년이면 다글다글 익어간 붉은 들판을 보며 시방 죽어도 여한 없을 기쁨을 누렸고, 땅을 팔 때마다 쓸려 나오는 엽전 같은 땅콩을 보면 한주먹씩 바람에 날려 드는 까실한 흙을 먹어도 좋았다. 손톱 밑 살들이 닳아 터져도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위안이 되었다. 철 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익듯 엄마의 손톱 밑 터진 살에서도 붉은 꽃이 피고 열매가 익듯 딱지가 들어앉았다. 안방 전화기 옆에는 손바닥만 한 아버지의 작은 수첩과 반창고가 집주인 노릇을 했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반겼고 눈을 마주쳤다. 인생을 가다듬으며 살아갈 새도 없이 들과 장에서 삶을 유린 당한 엄마에게 만병통치약 같은 이 반창고는 어느새 엄마의 주치의가 되고 있었다. 부엌 찬장 작은 서랍엔 사시사철 서리 맞은 듯 하얀 반창고가 간간이 들어오는 빛줄기를 받으며 서랍을 열 때마다 엄마의 손을 힐끔거렸다. 집안 구석구석 손 닿는 곳 어디든 어느 날부터 생선보다 반창고가 더 많이 보였는데 그렇게 세월을 먹으며 나이가 들고 엄마도 익어갔다.


명절 대목엔 나도 장에 나가 일을 도왔다. 생선값을 잘 모르니 동태나 고등어 갈치 같은 값을 아는 생선을 팔거나, 엄마가 주는 생선을 회포대 종이에 싸서 손님에게 건네는 게 다였다. 좀 더 싸게 사려는 손님과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남겨야 하는 엄마는 간혹 작은 마찰도 생기기도 했으나 엄마는 항상 웃으며 넘겼고 작은 생선 하나라도 넣어주고 달래서 보냈다. 반창고로 당신 손끝을 감듯이 말이다. 인심 좋고 장사 수완이 좋았던 엄마의 넉넉함에 단골손님이 많았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다들 명절 장을 보러 나와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을 부칠 동태포를 뜨느라 엄마 일은 더 늘었고 껍질을 제거하고 지느러미를 쳐내어 포를 뜨는 작업은 오래 걸렸다. 명절이라 동태전을 부칠 많은 단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가 되니 어깨와 팔목이 시큰거리는지 작은 손가방에서 파스를 꺼내 붙였다. 손가락 마디에 붙인 반창고는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손톱 밑에 돌돌 말린 반창고는 거뭇거뭇 때가 탄 채 비린 생선에 절여져 있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엄마는 차가운 돌덩이 같은 밥을 뜨거운 물에 말아 먹었다. 채 삼키기도 전에 손님을 맞아야 했고 훌훌 넘기기 좋은 물에 말은 밥이 그나마 엄마에겐 먹기 편했다. 엄마 가게 바로 앞에 국밥집이 있었으나 한가롭게 앉아 밥 먹을 새가 없었다. 종일 밖에 있으니 겨울이면 얼굴이 빨갛게 얼어 동상이 걸렸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엔 빨갛게 언 얼굴을 가리기 위해 진하게 분칠을 했다. 어린 내겐 바람이 스칠 때마다 코끝에 맴도는 잔잔한 분향이 좋았으나 엄마에겐 콤플렉스였다. 여름은 여름대로 땀띠로 뒤범벅이었으니 일생을 당신을 잃고 살았다. 치매가 왔을 때 당신을 잃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돌아보면 엄마는 단 한 번 당신을 기억하며 당신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 없었으니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힘겨운 계절이다. 날이 추워 손이 곱은 데다 얼어있는 생선을 만지느라 손등은 쩍쩍 갈라져 간혹 곳곳에서 피가 나왔다. 밤이면 번들거리도록 콜드를 바르나 내일이면 또 물을 만지고 꽁꽁 언 계절에 꽁꽁 언 생선을 만져야 하니, 밤새 아물었던 손등과 손톱 밑 살들은 다시 갈라지기 일쑤였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오일장 세 곳을 다녔으니 집보다 장에 머무는 날이 더 많았고 집에서 쉬는 날은 들에 다녀야 해서 엄마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내가 중학교 다니면서는 오일장 한곳을 줄이고 두 곳만 다녔다. 그때쯤 도외지로 떠나간 사람들도 생겼고 시내로 나가 장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져 시골 오일장은 예전만큼 돈벌이가 넉넉지 않았다. 생선이라도 많이 팔리는 날엔 종일 생선 냄새에 찌든 앞치마에서 꺼낸 돈을 세며 천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도 옆에서 함께 돈을 세기 바빴다. 장사가 안 된 날은 말없이 하늘을 보고 뜨거운 물을 받아다 손을 씻었다.


장에 다녀온 날 저녁 엄마의 손에 다시 하얀 조팝꽃이 피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에 새 상처가 생겼고 튼 손등에선 피가 나왔고 손톱 밑 살들은 헤죽거렸다. 매일 물을 만지고 사니 반창고를 떼고 붙일 때마다 희멀거니 탱탱 분 찢어진 살들은, 건드리면 툭 터저버릴 것처럼 벌어져 나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 반창고를 자르는 내 손마저 조심스럽고 하얗게 불어 터진 상처 난 손을 볼 때마다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들었다. 하얀 조팝꽃으로 피어난 반창고는 엄마의 손톱 밑에서 이내 붉게 물드는 때도 있었고 엄마가 좋아하는 봉숭아꽃으로 피어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서리 맞은 반창고에 단풍이 들고 거뭇한 때가 들어앉아 누추해진 엄마의 한숨에 눅눅한 바람이 일었다. 말린 생선 하꼬짝으로 불을 땐 펄펄 끓는 아랫목에 어깨와 등을 지지며 금세 잠이 든 엄마다. 집 앞 골목길까지 울리는 천둥 같은 코 고는 소리가 힘들었다고 푸념하지 않아도 얼마나 고단한 하루였는지 말해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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