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고양이를 좋아해 보려고요.

제 친구는 고양이만 보면 사족을 못 씁니다. 식당에 가다가도 길고양이를 발견하면 기필코 쫓아가 애정 표현을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창밖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면 총알같이 튀어나가 기어이 먹을 것을 챙겨주고 옵니다. 급기야 이제는 집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상전처럼 모시고 살고 있지요. 사실 처음에는 그런 친구를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양이가 무척 무서웠거든요.

고양이가 내는 특유의 소리도, 앙칼지게 발톱을 세우는 모습도 제게는 공포였습니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영향 때문인지 거의 트라우마 수준이었지요. 아마 저는 전생에 강아지였을지도 모릅니다. 소위 말하는 '견묘지간(犬猫之間)'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지요.

어릴 적 국어책에서 읽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함께 주인의 구슬을 찾아오던 개와 고양이가 강을 건너다, 입에 문 구슬을 확인하려던 개의 질문에 고양이가 대답을 하는 바람에 구슬을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때부터 서로를 탓하며 앙숙이 되었다는 그 슬픈 전설이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가 고양이와 한 지붕 아래 사니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왕래를 끊을 수도 없고, 친구 집에 갈 때마다 저를 빼꼼히 쳐다보는 녀석들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물론 저도 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만큼은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 불리할 때마다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러우니까요.

사람의 생김새를 동물에 비유할 때 고양이는 참 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쥐나 뱀, 여우에 빗대어 비방하는 표현들에 비하면, 고양이는 친근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심지어 섹시한 이미지까지 풍깁니다. 미인들 중에도 큰 눈과 살짝 올라간 눈매,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지닌 '고양이상'이 많지요. 애정을 구걸하지 않는 그 도도함은 고양이만의 독보적인 매력입니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왜 그토록 고양이를 싫어했는지 말입니다. 사실 저는 고양이의 그런 매력을 단 한 조각도 가지지 못한 거였습니다. 고양이의 존재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라, 철저히 '강아지상'인 저의 질투였던 셈이지요.

고양이야, 내가 너와 직접 소통하긴 아직 서툴지만 대신 내 친구에게 이 미안함을 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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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선물한 미소짓는 고양이 동전지갑(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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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면- 꽤 섹시한 뒤태^^>

▲ "장화 신은 고양이보다 훨씬 섹시하지 않나요? 너에게 한 번도 미소를 받지 못했지만, 대신 내가 웃고 있는 고양이를 만들어 보았어. 이제 우리 화해한 거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고양이의 미소를 수놓다 보니, 어느새 제 마음속 공포도 조금씩 옅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비록 그의 살가운 '야옹' 소리는 여전히 낯설지만, 이 작은 동전지갑 속 고양이의 미소만큼은 이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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