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아들과 오랜만에 긴 통화를 했습니다. 카톡이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거리감 없이, 그것도 무료로 수다를 떨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통화 시간이 어느덧 2시간 40분을 훌쩍 넘겼더군요. 카톡 회사가 경영난을 겪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거창한 담론이나 국가적 비전을 논한 것도 아닌데, 전화를 끊고 나니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나 싶어 웃음이 났습니다. 주유소에 카드를 꽂아두고 온 저의 건망증 이야기, 시위대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3시간을 갇혀 있었다는 아들의 하소연, 미국 물가 걱정 같은 소소한 일상들뿐이었지요. 제가 테슬라 주식을 딱 1주 샀다고 고백했을 때 빵 터지던 아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행복하게 하고, 시간을 잊은 채 수다에 빠져들게 했을까요? 아마도 지구 반대편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잊게 할 만큼 깊은 '연결감' 덕분일 것입니다. 일상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함께 웃고 떠드는 사이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만약 세대가 다른 우리 모자가 정치적 이념이나 AI 시대의 노동 구조, 지구 온난화 같은 무거운 주제만 다뤘다면 아마 이야기는 금방 바닥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사회적 이슈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당면한 현실이 더 시급하기에, 자칫 기성세대의 잔소리로 들릴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 중에 살짝 버무리는 정도로만 제 관심을 표현하곤 합니다. 아들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적당히 눈감아주는 것이겠지요.
저는 대학 졸업 후 줄곧 일해온 엄마였고, 명예퇴직을 한 지금도 제 일을 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조금은 무심한 엄마입니다.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때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립적이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기도 합니다. 맞벌이를 해야 만 하는 풍요롭지 않은 경제적 여건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런 아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어딜 가든 너를 생각하며 열심히 사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향한 간절한 기도 한 자락을 보태는 것이지요.
▲ "험한 바다를 건너는 아들이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등대를 세우고, 그 곁을 지키는 엄마 고래와 아기 고래를 수놓았습니다."
아들이 유학을 떠날 때, 전자기기 소품들을 챙겨 넣으라고 이 파우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제 작품의 주제는 늘 '기도'와 '엄마의 마음'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생활한 아들이기에,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시고 어두운 밤이나 폭풍우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비춰주시길 바라는 마음을 바늘땀에 담았습니다. "힘들 때 엄마 생각하렴" 하는 속마음도 슬쩍 끼워 넣었지요.
친구가 등대처럼 세상의 빛이 되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냐 묻기에, 땀 흘리며 열심히 헤엄치는 엄마 고래와 아기 고래를 보라며 킥킥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묵묵히 인생의 바다를 건너본 자만이 타인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등대를 보며 꿈을 꾸던 소년이 이제 스스로 등대가 되기를. 그리하여 항해하는 배와 어린 돌고래들에게 희망과 안전을 전해줄 수 있는 넉넉한 존재로 자라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