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고양이일까? 호랑이일까?

올해는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라고 합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그해의 띠별 소품을 만들곤 했는데, 올해는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뱀띠 해라 동전지갑 하나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배로 기어 다니는 길쭉한 동물은 무엇이든 징그럽고 무서워서 그림으로도 똑바로 보기조차 어렵거든요.

봄기운이 완연해 겨울 가방을 정리하던 중, 오랜만에 봄 가방을 이리저리 찾았습니다. 제가 만든 작품 중 가방이 단연 가장 많으니, 만약 제가 영부인이 되었다면 한국의 이멜다(필리핀 독재자의 부인, 사치의 대명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웃음)

저는 가방에 꼭 무언가를 매다는 것을 좋아하는데, 봄 가방에 매달린 호랑이 동전지갑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이 호랑이띠이기도 하고, 은근히 아들이 호랑이처럼 용감하고 강인한 의지, 리더십을 갖춘 멋진 남자로 자라길 바라는 엄마의 소망도 담겨 있어 참 애장하던 소품이었습니다. 요즘은 동전을 쓸 일이 거의 없어 유선 이어폰을 넣어 다니곤 했지요.

저는 남들이 다 꾼다는 태몽 한 번 꾸지 않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 아이를 잃고 6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어느 날 동생 내외가 꿈을 사라고 하더군요. 장난처럼 단돈 만 원을 주고 꿈을 산 후에 거짓말처럼 아들을 낳았습니다. 신라 시대 김유신의 여동생이 언니에게 꿈을 사고 결국 왕비가 된 이야기처럼,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떠올리기도 싫은 그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모를 지경 속에서, 저를 생각해 주는 동생네의 그 마음이 참 고마웠기에 기꺼이 꿈을 샀습니다.

현대 의학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제 몸에서 기적처럼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 기쁨과 경이로움은 오죽했을까요. 또래 아이들보다 말문이 늦게 트여도,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젖병에 우유를 먹어도, 그저 똥만 잘 싸도 박수를 쳐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털 많은 곰 같은 아들 녀석이 어릴 때는 어찌나 곱상하고 겁이 많던지요. 유치원 소풍을 가면 놀이기구 하나를 못 타 선생님이 따로 지켜봐야 했고,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축구할 때 물 떠다 주고 공 주워주는 일밖에 못 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온 가족이 근심에 휩싸였습니다. 이러다 왕따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태산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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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자라라 세워둔 엄마의 작은 소망. 비록 아들은 곰이 되었지만, 이 작은 호랑이는 여전히 제 가방에 매달려 우리 가족의 든든한 수호신이 되어줍니다."


호랑이처럼 자라주길 바라는 건 애초에 글렀다 싶었습니다. 고양이면 어떻습니까. 내성적이지만 조용하고 신중한 아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요. 제가 집사(교회 집사이기도 하고, 고양이 집사이기도 한... 웃음)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선물처럼 온 아이이니, 저는 밥 잘 먹이고 교육 잘 시켜서 착하고 법 잘 지키는 민주시민으로 키우면 제 밥벌이는 하겠지 싶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게 감사했습니다.

50세를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라 했습니다. 50대를 지나오며 철학적으로 멋지게 살진 못했어도 최소한 지나친 기대와 욕망을 자제하고, 모든 것을 제 주관이 아닌 객관적 관점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키우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단기간의 성공을 쫓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려 했지요. 본래 고양이와 호랑이는 생김새는 비슷할지 몰라도 전혀 다른 동물이니까요.

이제 제 나이 60세, '이순(耳順)'입니다. 귀가 순해져서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젊은 시절에는 제가 호랑이인 줄 알았습니다. 강한 의지와 결단력,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쳐 노력하면 못 할 게 없는 줄 알았지요. 하지만 세월과 함께 고양이가 되어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독립적이긴 하지만 유연한 사고를 하고, 조용히 관찰하며 작은 행복도 소중히 여길 줄 압니다.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며 약간은 게을러진 것까지, 고양이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호랑이의 강인함이 이 나이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키우면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드라마를 찍을 사연들도 많았지만, 아들은 현재 고양이보다는 조금 크고 호랑이가 되기에는 에너지와 용맹함이 못 미치는 존재입니다. 일 년에 키가 10cm씩 자라던 사춘기 때처럼,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본격적인 정신적 성장기에 있는 아들이 어떤 존재가 되든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태몽 하나 꾸지 못해 인정 많은 외삼촌 내외가 대신 꿈도 꾸어준 부족한 엄마에게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마냥 고맙고 대견하니까요.

그런데 아들은 날이 갈수록 호랑이 과는 아닙니다. 곰 과에 가깝습니다. (웃음)

12지신에 곰띠를 새로 넣어야 할 판입니다. 혹시 뱀띠를 뺄 순 없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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