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동아리 오디션 3

BTS 방지혁

by 토박이

오디션장의 시계는 밤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빠져나가고, 빈 의자가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기다림에 지쳐 고개를 떨구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봐야 할 시간.

하지만 지금, 이곳의 공기는 분명 달랐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단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여학생.

이제 곧 내 차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장은 조용했다.

손도 떨리지 않았다.

긴장 대신, 다른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내 모습 떠올라~ 긴 한숨 짓고 있다면~

쌍꺼풀이 자연스럽게 접힌 맑고 투명한 눈.

눈꼬리가 살짝 처진 게 꼭 주인만 바라보는 강아지 같았다.

흰 티셔츠 차림에 단정하게 묶은 머리, 볼을 스치는 잔머리까지.

그녀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 안의 모든 시선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의 시선이 함께

호흡하는 것 같았다.

진행자는 어느새 두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다른 남자 선배들도 표정이 비슷했다.

편파라고 항의하면야 할 말은 없겠지만... 솔직히 항의할 마음이 1도 없었다.

이런 건 눈감아줘야 한다고 그 순간의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반대편이었다.

여자들로만 이뤄진 심사위원석.

그쪽 공기는 서늘했다.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모습이 괜히 신경 쓰였다.

특히 가운데 앉은 덩치 큰 여성은 도끼날 같은 눈빛으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무대를 째

려보았다.

진짜로 코에서 김이 날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노래 실력은... 솔직히 말해 그저 그랬다.

못하진 않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할 만큼 특별하지도 않았다.

제발 합격해라. 진짜로, 제발.

나는 올해 쓸 수 있는 모든 행운을, 전부 그 소원에 털어 넣고 있었다.



짝. 짝. 짝짝짝.

오디션 시작 이후 처음으로 박수가 터졌다.

출처는 명확했다.

남학생들.

오로지 남학생들.

당연히 나도 그 대열에 충실히 합류했다.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숙이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흠흠.”

반주부의 핀잔에 진행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정말 끝이 머지 않았네요. 마지막 참가자까지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숨을 삼킨 뒤, 종이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그럼 다음 참가자는... 고구려대학교 공과대학부, 홍영기 참가자!”

“......”

“...고구려대 홍영기 참가자요?”

분명히 내 차례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직 하나뿐이었다.

김주리...

성실여대 간호학과... 김주리...

홍영기 학생 없나요?

재차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기 시작했다.

“아, 아- 여기요! 저 홍영기요!”

나는 헐레벌떡 무대로 뛰어나갔다.



“산 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 충 깡 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토끼는 뭐, 힘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자유곡이었다.

나는 도혀니 형님의 노래 ‘너를 보내고’를 준비했다.

무대에 서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좀 전의 그 여학생이 앉아 있는 자리.

쿵쾅거리던 심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일주일 동안 노래방에서 피나게 연습했던 노래.

친구들의 혹독한 심사평 앞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떨궜던 순간들.

노래는 공식이야 인마. 처 외우라고!

특히 핏대를 세우며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부산 트레이닝 사나이, BTS 방지혁이.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



구름낀 하늘은~ 왠지 니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영기야 시작은 스근~하게 알았제? 말한다 생각카고 불러라 느끼하몬 안된대이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고마 힘 빼라 아직 아이다 니 와이라노 니 아직도 정윤이 생각카나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눈 뜨라 문디 자슥아 눈 똑디 뜨고 인자 고마 확 질러뿌라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저~ 멀리 어디 건물 본다 생각카고 시선 아련~하게 그래 바로 그기야~~ 됐다마 욕봤대이



이상으로 2001년도 아름소리 3차 오디션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진행자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길었던 저녁이 막을 내렸다.

여섯 시에 시작된 오디션은 어느새 밤 아홉 시를 넘기고 있었다.

의자를 밀고 일어나는 소리, 지원서를 정리하는 소리,

뒤늦게 터지는 한숨들이 오디션장의 끝을 알렸다.

준비한 만큼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더 잘할 수도, 덜할 수도 없었다.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그때 진행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디션 뒷풀이는 길 건너 신세계 중국집에서 할 예정이니까,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함께해 주세요.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벌써 밤 9시네... 이거 시간이 좀 애매한데...

주변을 둘러보니 일찍 끝난 지원자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 있는 얼굴은 손에 꼽을 정도.

뒷풀이에 갈 사람도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집이나 가야겠다.

나는 가방을 메고 오디션장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복도 한쪽 끝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가만 보니 남자 몇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노래 진짜 잘하시던데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음정도 되게 안정적이던데.”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

성실여대 간호학과, 김주리였다.

“뒷풀이 같이 가요. 저희 동아리 그렇게 무겁지 않아요.”

“맞아요, 진짜 재밌어요.”

진행자까지 가세해 분위기를 띄웠다.

“아... 예. 그럼 잠깐만 있다가 갈게요.”

그녀는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여섯 명이나 되는 남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중국집으로 향했다.

이런, 씹*끼들.

저 시커먼 속내들을 모를 줄 알고.

어이가 없어 몸을 돌렸다.

그래서 집으로 그냥 가냐고?

미쳤어?

갈 땐 가더라도 짜장 한 그릇 정도는 괜찮잖아?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