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머리 그녀
신세계 중국집은 동아리의 역사 같은 곳이었다.
매주 목요일, 동아리 정규 모임이 끝나면 늘 찾는 단골 식당이라고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우리를 제일 안쪽 홀로 안내했다.
서른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만큼 긴 공간.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얼핏 보니 오디션 참가자 두 명에 선배 두 명씩, 그렇게 짝을 이룬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성실여대 간호학과 김주리를 찾았다.
하지만 주리는 이미 여러 남자 선배들 사이에 포위된 상태였다.
누군가는 빈 컵에 물을 따라주고, 누군가는 주리에게 개수작-, 아니 말을 걸고 있었다.
그곳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한 발 늦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옆 테이블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맞은편에 앉은 남녀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녕하세요. 거기 앉으시면 돼요.”
알고 보니 둘 다 00학번 집행부 선배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낯을 많이 가리는지, 그 뒤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원래도 어색한 자리였는데, 침묵까지 이어지니 더 불편해졌다.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옆자리에는 신입생으로 보이는 애가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사자갈기처럼 부풀린 파마머리의 여학생이었다.
전인권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과하다 싶을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냥 쌩까기도 뭐해서 고개만 살짝 까딱했다.
그런데 그 애는 인사 대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볼 뿐이었다.
마치 물건 보듯이.
‘...뭐야.’
기분이 살짝 긁혔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내 관심사는 따로 있었으니까.
잠시 후 테이블마다 탕수육 소짜와 서비스 군만두, 그리고 소주 두 병이 차례로 놓였다.
각자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한잔하기 위한 배려였다.
갓 스무 살이 된 내게는 이 모든 게 신기했다.
이렇게 넓은 중국집 홀에서 요리를 앞에 두고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나는 선배와 옆자리의 사자머리와 잔을 부딪친 뒤, 서둘러 탕수육을 집어 먹었다.
술이 몇 잔 돌때쯤 입구쪽이 술렁였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OB 선배님들 오셨네요.”
옆 테이블 선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홀 안에 있던 선배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인사가 홀을 가득 메웠다.
나도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OB 선배들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
집행부 선배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자, 신입생 여러분. 우리 동아리 OB 선배님들이세요. 오늘 행사비 지원해주신 분들이니까 인사 잘 드려야 해요. 다 같이 인사!”
“안녕하세요!”
우리는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 광택 나는 구두.
그들이 자리에 앉자 주변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뭐랄까, 무게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이 많은 사람들의 식사비를 흔쾌히 낸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달라 보였다.
‘저게 직장인이구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 선배들은 벌써 졸업해서 돈을 벌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사는 세계는 전혀 달라 보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졸업하고, 취직하고, 양복을 입고 후배들 밥을 사주는 멋진 선배.
사실 이 동아리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남자들뿐인 공대 생활이 지루하고 답답해서.
더 솔직히 말하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합창이고 뭐시고, 그냥 즐겁게 대학 생활 좀 보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저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나도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고 싶다는 욕심.
후배들의 인사에 가벼운 손짓으로 응답하는 그 여유.
질투도, 동경도 아닌-
뭐라 이름 붙이기엔 애매한 감정이었다.
아마도 조금 더 멋지게 살고 싶다는, 그런 포부 같은 것일 것이다.
후훗, 나도 참.
갑자기 탕수육 한 접시에 청춘드라마라니.
좀 오바스럽긴 했다.
그런데도 기분이 묘했다.
간질간질하다고 해야 할까.
...간질간질.
잠깐.
이건 진짠대?
오른쪽 목이 가려웠다.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아놔.
사자머리 꽐라됐네.
목이 직각으로 꺾인 채, 그 갈기가 내 목을 사정없이 긁고 있었다.
“어이, 어이! 정신 차려봐!”
나는 사자머리를 불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손가락 끝으로, 내 목에 기댄 그 갈기를 슬쩍 밀어냈다.
그러자 사자머리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한참 보더니.
“나 무~울.”
이게 어디서 혀 짧은 소리야.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안쓰러운 마음에 물컵을 들어 그 애 손에 쥐여줬다.
그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하나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읽혔다.
전마, 누꼬? 가스나 괘안켄나?
저 새끼는 오자마자 작업질이네.
지금 여자애 술 멕인 거야? 왜에!? 어유, 징그러...
하하, 이거 참.
...아니에요.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내가 저런... 하아, 나 진짜 아니라고!!!
나는 맞은편 선배들을 향해 눈으로 SOS를 보냈다.
당신들 뭐야, 집행부라며.
이럴 때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낯가림이 훨씬 더 심했나 보다.
나보다 본인들 얼굴이 더 빨개진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던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총 맞은 것처럼 새하얘졌다.
보 고 있 다
그녀가.
날 보고...
......
근처에만 가도 콱 물어뜯을 것 같은 주리의 얼굴.
“나 또 무~울.”
우오오 크흐아아아야야야~
단전에서부터 딥빡이 올라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자머리는 이제 대놓고 내 눈앞까지 오더니, 쪼개기 시작한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
그냥 사자가 아니었네.
이 새ㄲ... 저승사자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