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오디션 뒤풀이 3

창원소년 이준수

by 토박이

뒤풀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상혁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더 듣고 끝내겠습니다!

선배는 술자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오디션에서 아쉬웠던 분들, 다시 한 번 기회 드릴게요. 용기 있게 도전하실 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로 눈치만 보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정말 없나요? 백 프로 플러스 점수가 나갈 텐데.”

아이씨, 어떡하지.

나가야 되나.

오해를 풀 기회였다.

그런데 창피해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였다.



저요!

한 남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일어났다.

“오오, 자! 모두 박수!”

와아아아-!

환호와 함께 그 학생이 자리 중앙으로 나섰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왜소한 체구였지만, 표정만큼은 비장했다.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고구려대학교 강철공대 이준수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철공대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상혁 선배가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이 친구는요, 실은 1차 때 떨어지고 오늘 다시 도전한 재수생입니다!”

“오오~”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귀까지 빨개진 준수는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이니까... 신나는 걸로 뽑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같이 불러주세요! 자, 다짐 갑니다~!”


원 투 쓰리, Let’s Go-

빠라바빠 빠밤빠~ 빠라바빠 빠밤빠~

빠라바빠 빠- 빠- 빠- 빠- 빠-


그는 온몸으로 박자를 쪼갰다.

짧디짧은 팔다리를 촐싹맞게 휘두르며 방방 뛰었다.


오~ 그때 내가 아니야, 니 얼굴만 봐도 눈물 짓던~


음정이 완벽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폭발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우와아아아~~~!!!

“그때가 더 낫다!”

“합격 가즈아~~!”

“하하하하하!!!”



준수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그를 격려했다.

누군가는 의자 위에 올라섰고, 누군가는 맥주잔을 흔들었다.

문득 오디션 때 준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그냥... 무난했다.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던 참가자.

하지만 지금 그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람들 앞에 섰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나보다 낫네. 그래, 인정.’

속으로 감탄했다.

내 가슴 한쪽이 괜히 뜨거워졌다.

노래가 끝나자 준수는 상기된 얼굴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잔이 부딪히고, 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상혁 선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앞으로 나왔다.

그럼 이것으로 2001년도 아름소리 오디션 및 뒤풀이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아~~”

한켠에서 아쉬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한 잔 더 생각 있으신 분들은 맞은편 쪼끼쪼끼로 오시기 바랍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고요, 그럼 다들 안녕히 들어가세요~!”

박수와 한숨, 의자 긁히는 소리.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자, 가게 안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나는 무심한 척 주리를 훔쳐봤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출입문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뒷모습이 붉은 조명 아래에서 잠시 빛났다가 사라졌다.

‘제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나는 빈 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2차 가자. 딱 한 잔만 더 하게. 응?”

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지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이들, 아쉬운 듯 길가에 서성이며 인사를 나누는 이들.

혹은 2차를 제안하며 상대를 설득하는 이들.

모임의 끝자락에 흐르는 특유의 쓸쓸함과 공허함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가기 전에 한 대만 피우고 갈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쥐고, 흡연구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까이 가보니 상혁 선배와 준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담배 연기가 가로등 불빛에 엷게 흩어졌다.

“안녕하세요.”

멋쩍게 인사하자 상혁 선배가 나를 알아봤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우리 학교네?”

“아, 선배님도 공대세요?”

“아니, 나는 이과대. 수학과.”

준수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동아리에 고구려대생이 많은 것 같던데요?”

“여기서 가깝잖아. 윗기수 중에 고구려대 출신도 많고. 그래서 홍보를 더 빡세게 했지.”

선배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대답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슬쩍 물었다.

“그럼... 여자 쪽은 어디가 많아요?”

아차.

말해놓고도 내가 너무 노골적이었나 싶었다.

선배가 픽 웃었다.

“여자는 다양해. 근데 여대가 좀 많지. 공대생인 니들이랑 똑같지 않겠냐.”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요?”

괜히 등이 뻣뻣해졌다.

“너 너무 대놓고 밝히는 거 아니야? 아까 옆에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된 거야?”

젠장, 역시나.

“아, 그건 진짜 오해예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당황해서 해명하려는데 선배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알아, 알아. 네 앞에 우리 집행부 애들이 다 말해줘서 알고 있어.”

휴, 다행이다.

순간 가슴에 얹혀 있던 돌 하나가 툭 떨어졌다.

“너희는 2차 안 가?”

“네, 지하철 끊기기 전에 들어가려고요.”

준수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냥 갈게요.”

“그래, 그럼 잘 들어가고. 합격해서 봤으면 좋겠다.”

선배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합격해서.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는 선배와 헤어져 지하철역 쪽으로 걸었다.

밤공기가 조금 차가웠다.

“오늘 어땠어?”

잠자코 걷던 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재밌었냐고 묻는 거라면... 글쎄.

단지 쫌 억울했고, 쪽팔렸고, 설렜다는 거?

하지만 확실히 이 밤이 끝나는 건 아쉽긴 했다.

“그냥... 좋았어, 오늘.”

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야, 넌 어디 사냐?”

“형이랑 일원동에서 자취해. 너는?”

“난 학교 앞 고시원.”

“응... 근데 너 말투가 이쪽 아닌 것 같은데. 고향이 어디야?”

“나는 창원. 영기 넌 어딘데?”

“나는 목포.”

“그래, 니도 좀 티가 나드라.”

“하하, 그래? 티 많이 나냐?”

우리는 서로 피식 웃었다.

처음 보는 사이답게 대화는 수박 겉만 핥듯 가볍게 이어졌다.



먼저 물꼬를 튼 건, 역시 준수였다.

“근데... 영기 너 여자친구 있냐?”

“있으면 여기 왔겠냐.”

“크크크, 나도. 아이고, 기껏 대학 왔더니 무슨 죄다 고추밭이노. 나 남중 남고 나왔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한 달 동안 겁나 우울했다.”

“맞제? 하하하... 근데 니는 오늘 누가 제일 이쁘드노? 응? 함 말해봐라, 솔직하게.”

여자 얘기가 나오자마자 준수의 사투리가 본격적으로 튀어나왔다.

게다가 말끝까지 조금씩 더듬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경상도 사람과 거의 대화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말투가 낯설

면서도 묘하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춤추는 모습을 보면 또 어딘가 촐싹맞아 보였다.

입도 가벼울 것 같고.

‘이런 일은 보안이 생명이지.’

“나는 글쎄... 오디션 신경 쓰느라 제대로 못 봤어. 너는?”

“난 다 이쁘더라. 내 눈이 좀 낮다아이가. 완전 물 반, 고기 반이야.”

준수의 얼굴은 벌써 합격이라도 한 사람처럼 환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지하철역 앞이었다.

“그럼 잘 가고 학교에서 보자.”

“응, 그래. 니도 잘 들어가래이.”

우리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돌아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좀 촐싹맞아 보여도, 용기 있고 서글서글한 놈이네.

같이 붙으면 재밌겠다.

그리고-

주리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오늘 밤은 아무래도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