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오디션에 합격하셨어요.

다시, 그녀

by 토박이

오디션 이후 일주일이 흘렀는데도 끝내 연락은 없었다.

‘젠장, 떨어졌나.’

강의실을 오가면서도, 과제를 하면서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대 위에서 빛났던 주리의 얼굴.

그리고 그 사자 머리.

하필이면 그런 애랑 엮이는 바람에, 내 맑고 성실한 이미지도 덩달아 휘청한 기분이었다.

나는 애꿎은 돈가스를 젓가락으로 툭툭 찔러댔다.

맞은편의 석환이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야, 그 동아리 아직도 연락 없어?”

“응... 아직.”

옆에서 밥을 퍼먹던 방지혁이 킥킥 웃었다.

“전마, 떨어질 줄 알았대이. 내가 표정 관리 잘하라 안 했나.”

놈은 괜히 내 얼굴을 흉내 내며 찡그렸다.

얼굴에 피가 확 몰리는 게 느껴졌다.

녀석에게 돈가스를 하나 날리려던 그때였다.



부르르르-

모르는 번호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여,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름소리 집행부 최원준입니다.”

털이 바짝 서는 기분.

“오디션 합격하셨어요. 이번 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동아리 연습실로 나와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석환이가 당황한 얼굴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네, 네! 꼭 나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주변 시선이 느껴졌다.

방지혁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예스! 예스!

드디어.

그녀를 다시 본다.

목요일 여섯 시.

벌써부터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교수의 목소리도, 옆자리에서 중얼대던 석환이의 헛소리도 전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제법 남아 있었기에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형의 옷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네이비 셔츠를 꺼냈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단추를 풀었다 잠갔다 반복했다.

마무리는 향수다.

다비도프 쿨 워터.

유럽 남부 휴양지의 섹시 가이 필수템.

유럽은커녕 목포도 겨우 벗어난 내가 알 리는 없다.

그래도 잡지에서 봤다.

틀림없을 거다.

손목에, 목덜미에 슥슥 뿌렸다.

라 라 라 라 라 라~ 날 좋아~ 한다고~

하아~ 시원해...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며 지중해 해변을 걷는 기분.

‘좋았어. 이정도면 완벽해.’



기대 반, 설렘 반.

동아리 연습실로 향하는 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상혁 형이 나를 보자마자 손을 휘저었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너 빼고 벌써 다 왔다. 얼른 들어가!”

“아, 네! 죄송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지나쳤다.

그리고 마침내, 연습실 문 앞에 섰다.

저 문 너머에.

그녀가 있겠지.

나를 돌아보며 웃을지도 모른다.

영기야, 티 내지 마라.

절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시원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와닿았다.

덕분에 들썩이던 마음이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숨을 가다듬은 뒤, 문을 스윽 밀어 열었다.



“안녕하세요.”

연습실 안은 이미 떠들썩했다.

삼삼오오 모여 웃고, 이름을 묻고, 축하를 건네는 목소리들.

문이 천천히 열리며 왼쪽 끝에서부터 한 명씩 눈에 들어왔다.


그래, 너 노래 잘했지. 뽑힐 만했어.

아, 너도 붙었구나.

처음 보는 사람도 많네.

쟤들은 1차나 2차 때 왔나 보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

오, 준수!

준수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어색하게 따라 손을 들었고, 다시 시선은 자연스레 옆으로 돌아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오른쪽 끝으로.



드디어.

문이 완전히 열리고.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

심장은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고, 눈은 저절로 커졌다.

사람들 옆에 가만히 서 있는 그 아이.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무표정한 얼굴.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를 봤다.

그리고... 웃는다.

환하게.

한 번 더 크게.

나는 홀린 사람처럼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이름이 영기였지?”

지난 일주일간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녀.

진짜 티 내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먼저 열렸다.

마음이 튀어나왔다.


“...니가 여기 왜 있어.”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사자머리야...”




니가!

니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주리는...

탈락했다


집회를 마치고 뒤풀이 열기가 한창이었지만, 내 속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가 생각나 밖으로 나왔다.

봄인데도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담배 피게? 같이 가.”

상혁 선배가 따라 나왔다.

선배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주황빛 불씨가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표정이 왜 그래.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래? 기분 풀어. 실수할 수도 있지.”

정신을 차린 나는 황당해하는 사자머리에게 곧바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한마디로, 내가 그녀가 아닌 주리의 합격을 바랐다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

합창은 화음이라던데.

나는 첫 음부터 어딘가 삐끗해 있었다.



“죄송해요, 괜히 저때매...”

“야,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우리라고 가만있었겠냐.”

선배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거의 연예인급 외몬데. 다들 말했지. 근데 지혜가 꿈쩍도 안 하드라.”

조지혜.

오디션 날, 도끼눈을 뜬 채 심사석에 앉아 있던 그 여자였다.

“경숙이... 그 사자머리 걔. 지혜 학교 후배거든. 무조건 뽑아야 된다더라. 안 그러면 자기가 그만둔다고.”

선배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떡하겠냐. 피아노 칠 사람이 없는데. 반주부가 깡패지, 뭐.”

“그 누나가 피아노를 친다고요?”

사람 치는 게 아니고?

차라리 마동석이 피겨스케이팅을 한다고 해라.

순간, 또다시 속마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다행히 이번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배는 내 속을 꿰뚫어본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오디션 날, 유독 차갑게 주리를 훑어보던 시선.

마지막까지 남자 쪽은 전부 주리를 밀었고, 지혜는 피아노과 후배 경숙이를 고집했다는 것.

그 치열한 신경전 때문에 합격자 연락이 늦어졌던 셈이다.

결국 웃은 쪽은 지혜였다.

합창 동아리의 특성상, 반주부장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피아노 없이는 연습도, 공연도 불가능했으니까.

그녀의 권한은 남자들의 의견을 가볍게 눌러버릴 만큼 막강했다.

그녀의 체구처럼.



“어이, 거기 누구 담배 있으면 하나만 주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정말로 호랑이 한 마리가 어둠을 가르며 내려오는 듯했다.

지혜였다.

나와 슬쩍 눈빛을 주고받은 상혁 선배가 말없이 담배를 건넸다.

지혜는 능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깊게 빨아들였다.

후우-

몸통이 커서 그런지 연기가 참 길게도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너머로, 특유의 도끼눈이 나를 향했다.

“홍영기.”

내 이름이 불렸다.

심장이 괜히 움찔했다.

“너도 간당간당했다.”

“네...”

"앞으로 동아리 생활 잘해. 아까 같은 실수 하지 말고."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지켜볼 거야.”

코에서 용가리처럼 연기가 슈욱 뿜어져 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괜히 더 고개를 숙였다.

속마음이 또 튀어나올까 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몸을 돌렸다.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이 보였다.

아름답고 차갑고 선명하게.

하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 아름소리에서는.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