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힙합 보이
“자, 이제 그럼 3차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남자 선배의 선언이 떨어지자, 도착한 순서대로 이름이 불렸다.
드디어, 오디션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띵-.
피아노가 첫 음을 건드리는 순간, 대기실 공기가 차갑게 조여 왔다.
의자에 앉아 있던 지원자들은 동시에 숨을 삼켰다.
다들 비슷한 나이, 비슷한 떨림.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마지막, 3차.
이번에 떨어지면 끝이다.
반주부 선배가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지정곡, 산토끼. 반주에 맞춰서요.”
띵-.
“산~ 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국민 동요답게 대부분은 무난했다.
음정도, 박자도, 표정도.
감탄이 터질 정도로 압도적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무반주로 각자 제일 잘하는 곡을 꺼내는 시간.
여기서부터 실력 차가 확 벌어졌다.
어떤 사람은 발라드로 방 안 공기를 부드럽게 눌렀고, 어떤 사람은 첫 소절부터 무너졌다.
오디션까지 보러 온 사람들이니 다들 어느 정도는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예외는 있는 법.
“깡! 충 깡! 충 뛰! 며애에에- 쿠헤헥! 콜록콜록!”
첫 음을 너무 높게 잡았다.
고음에서 똥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던 참가자.
“사하아안~ 토오끼이이... 토오끼히야아아아...”
염소 한 마리가 들어온 줄.
어미 잃은 새끼도 이렇겐 못 울겠다.
누가 합격 못 하면 때려 죽이겠다고 한 건지.
긴장을 넘어, 겁에 질린 참가자도 있었다.
그리고 자유곡에서 제일 많았던 케이스.
노래 부르다 중간에서 멈칫, 눈이 흔들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처음부터 다시 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심사위원의 대답은 짧고 매몰찼다.
그 친구는 울상을 지은 채 오디션장을 빠져나갔다.
대기실에 남은 사람들은 아무도 웃지 못했다.
다음이 나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수십 명의 오디션이 반복되자 심사위원도, 지원자들도 서서히 지쳐갈 때쯤이었다.
“다음은... 선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류성룡 지원자분.”
“예엡~.”
구석에 있던 한 남학생이 벌떡 일어서는 순간, 오디션장 공기가 한 번 출렁했다.
비뚤게 푹 눌러쓴 검은 야구모자.
중학생이 삼촌 옷을 훔쳐 입은 듯한 오버핏 검은 티셔츠.
그리고 목에서 무릎까지 내려올 기세로 늘어진 체인.
끝에는 큼지막한 십자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Holy Shit!
바지는 더했다.
허리선이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 있어서, 실수로 바지 밑단이라도 밟히는 날엔...
바로 하의실종 각이었다.
이 유교 힙합 보이는 또 뭐지?
여기가 어딘지 알고나 온 건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비슷한 표정이었다.
심사위원은 낮게 헛기침을 했고, 진행을 맡은 선배는 잠깐 표정을 잃었다.
그가 느릿느릿 오디션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이 더 가관이었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았는데, 바지가 너무 내려가 있어 손가락 끝마디만 간신히 걸렸다.
다른 손은 모자 챙을 꼭 붙들고 있었다.
바람도 안 부는데 말이다.
비틀비틀, 어슬렁어슬렁.
경추는 어디 한군데 탈골이라도 됐는지 대가리가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든 말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저기... 좀 빨리 좀... 예, 예...”
한참을 기다린 진행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 합창 동아리인 건 아시죠?”
“예엡.”
그는 낮게,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단상 위에 선 그의 자세는 묘하게 진지했다.
그래서 더 어이없었다.
“...네, 그럼 시작할게요.”
진행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결국 무대를 내려갔다.
눈치를 보던 반주부가 건반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띵-.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뭐야, 저거.
미국 교포인가.
발음이 어눌했다.
박자도 빠르고, 노래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산토끼! 판토끼! 죽은토끼! 강토끼!
산토끼는 언제나 산에 사는 토끼! YES!!!
산토끼의 반대말은 알칼리 토끼, Oh~~ No!”
갑자기 랩이 튀어나왔다.
녀석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을 흔들어 댔다.
“자, 잠시만요!”
사색이 된 진행자가 단상 위로 뛰어올라왔다.
“산토끼! 판토끼! 죽은토-”
“네, 네! 알겠고요... 참 재밌는 분이 오늘 또 오셨네요. 하하. 크흠.”
진행자가 급히 끼어들었다.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자유곡은... 조금만 더 진지하게 부탁드릴게요.”
짧은 한숨을 내쉰 진행자는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여전히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휴우...”
긴장했는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타이거 이즈 인 더 프레전스- 밤! 밤!
업 인 더 래기즈- 밤! 밤! 타이거 이즈-”
“그만, 그만!”
진행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그를 멈춰 세웠다.
“네에.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세요.”
“한 곡 더 준비했는데요.”
“아니요, 충분히 알았습니다. 이제 그만-”
“쾌지나 칭칭나네~ 지금이! 니가 나설 차ㄹ-”
“나가아아!!!”
유교 힙합 보이의 합창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