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실험 훈련 & 선별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테니스 레슨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이름은 Magic Brew. 커피 트럭으로 시작해 매장으로 확장됐다는 이야기가 있는, 산티탐에서 유명한 카페다. 혼자 책을 읽는 사람, 길 건너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누가 잠깐 머무는 사람이고, 누가 오래 사는 사람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커피도 맛있었지만, 다시 찾게 된 이유는 사장님의 친절 때문이었다. 산미를 좋아하는지, 고소한 맛을 찾는지, 단맛을 선호하는지까지 손님의 취향을 기억하려는 분이다. 첫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도 같은 걸 마실건지 물었다. 오늘은 오렌지커피를 마시겠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내려주셨다. 며칠이 지났는데 나를 기억해주시다니! 치앙마이에 단골집이 생긴 것 같아 들뜬 마음으로 바 자리에 앉았다. 공간은 아늑했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치앙마이에 오고 나서 이런 카페를 종종 만났다. 도시와는 다른 여유로움 때문일까, 유독 서양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집을 사서 정착한 사람도 있고 퇴직 비자를 받아 장기 거주를 하는 사람도 상당하다고 한다. 평화로운 공기, 느린 속도, 저렴한 물가와 음식, 그리고 친절한 현지인. 아마 그들도 치앙마이의 이런 점들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을까.
“리차드?”
며칠 전 카페에서 본 얼굴이 떠올라 반갑게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리차드가 아니었다. 이런, 순간 머쓱해져 바로 사과했다. 아시아인들이 서로 비슷하게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는 내가 서양인의 얼굴을 헷갈린 셈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에릭, 프랑스 사람이었다.
리차드는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치앙마이의 산을 누비는 사람이었다. 에릭은 조금 달랐다. 그는 누워서 타는 자전거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누워서 자전거를 탄다고?' 처음에는 선뜻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개가 조금씩 끄덕여졌다. 에릭의 말에 따르면 누워서 타면 몸에 부담이 덜하고, 생각보다 차들의 시야에도 잘 보여서 차들이 먼저 자연스럽게 피해 간다고 했다.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해왔다고, 이게 가장 편한 여행 방식이라고 말했다.
잠시 뒤 프레드가 합류했다. 프레드는 빨간 안경을 머리 위에 얹고 핑크색과 보라색이 섞인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아저씨’라고 불렀을 것이다. 혹은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호칭을 부르지 않았겠지.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치앙마이에서는 나이를 확인하기 보다는 먼저 여행자가 된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 오늘 만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프레드와 에릭은 프랑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다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프레드는 치앙마이로 와서 오래 머물고 있고, 에릭은 일 년에 몇 번씩 이곳으로 여행을 온다고 했다. 최근에 치앙마이 북쪽 온천까지 자전거로 올라갔던 이야기, 도이인타논(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넘었던 날의 이야기, 도이수텝(황금 사원이 있는 산)의 일출을 본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커피는 이미 비어 있었지만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나는 나이가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굳이 결론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 프레드와 에릭의 이야기도 그랬다. 오늘 들은 삶의 이야기가 내가 앞으로 지나게 될 시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도이수텝에 가봤어? 거기서 보는 일출이 정말 예뻐.”
도이수텝. 맞다, 도이수텝이 있었지. 도이는 태국어로 산이라는 뜻이고 수텝은 지역 이름이다. 말 그대로 '수텝산'이다. 원래부터 가보고 싶던 곳인데, 정작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일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프레드와 함께 가보려고 시간을 맞춰보았다. 아쉽게도 좀처럼 일정이 맞지 않았다. 투어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가이드 투어 보다는 자유롭게 산을 오르고 싶었다. 결국 한국에 돌아가는 마지막 날 아침, 최소한 그 주변이라도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섰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여섯 시 반, 트래킹 시작점으로 향했다. 후기를 찾아보니 혼자 다녀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혼자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도이수텝까지의 거리가 써있는 표지판 앞에서 어떻게 할까 잠깐 서있는데, 멀리서 한 여성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얇은 긴팔에 러닝 조끼, 타이즈 바지, 선글라스까지. 누가 봐도 러너였다. 그녀는 내 앞에 서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나 지금 도착했는데.”
전화를 끊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트래킹하러 왔냐고.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름은 카이였다.
- 커피트럭에서 매장이 된 곳
- 사장님이 커피 원두 농장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 커피도 맛있고 오렌지커피도 맛있고 서비스도 좋고 친절한 곳
- 서양인들이 많이 오는 카페
- 가격: 아메리카노 40바트 (약 1800원), 라떼 50바트 (약 2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