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구글 지도에 없는 길에서

PART 2. 실험 훈련 & 선별

by 수련의기록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 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카이는 방콕에서 막 여행을 왔다고 했다. 왜 태국 사람들도 여행으로, 휴가로 치앙마이에 온다는 생각은 못해봤을까. 그녀는 치앙마이가 태국에서도 북부여서 덜 덥고, 산이 많아 트래킹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지, 여행지는 외국인에게만 열려 있는 게 아니었지.


결이 맞는 사람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알 수 있다. 질문과 대답하는 속도가 맞고 굳이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문장의 여백 사이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카이가 그랬다. 사람에게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니고, 우연으로 만난 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심지어 오늘 입고 온 옷도 내가 평소에 입는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화를 하며 조금 기다리자 멀리서 카이의 친구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름은 PK라고, 본래 이름이 길어서 이니셜로 부른다고 했다. 치앙마이에서 지내면서 독특한 영어이름을 쓰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밀크, 민트, 핑크, 그리고 발리까지. 영어 이름을 사람의 이름이 아닌 사물의 이름에서 따온 점이 신기했다. PK도 굉장히 특이한 편이었는데, 그녀의 익살스러운 웃음과 유머러스함이 마음에 들었다. 카이와는 대학 시절부터 친구라고 했다.


"오늘 어디까지 가려고 했어?"

"아직 정하진 않았어. PK가 처음 산에 가는 거라 체력이 되는 만큼 가려고 했지. 가고 싶은 곳이 있어?"

"도이수텝에 가고 싶어. 여기서부터 4.5km래. 괜찮아?"

"그래! 가보자."



트레킹 시작 전 밝은 얼굴의 카이와 PK, 실제로는 더 길게 느껴졌던 도이수텝까지 거리 4.5KM.






카이는 트레킹을 좋아해서 100킬로미터 트래킹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30킬로미터만 넘어가도 산에서 먹고 자는 것까지 해결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에 잠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도 트래킹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10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걸 보고 자신도 도전해보고 싶어 졌다고 했다. 산에서 100킬로미터를 걷고 뛰는 건 어떤 기분일까. 땅에서 달리다가 산을 달리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달리다보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걸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세상에는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방식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 길이 맞아? 우리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거야?”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셋다 초행길이었다. 카이와 PK가 태국사람이라도 치앙마이는 그들에게도 여행지였다.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길을 잘못 들었다. 검문소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중간에 있는 작은 문으로 빠져나갔어야 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길을 묻고, 겨우 중간 정착지인 왓파랏 사원에 도착했다.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돌아 나와도 괜찮았다. 바보 같다며 웃고 넘길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예민해졌을 상황이었지만, 우리에겐 에피소드가 됐다.


왓파랏 사원에는 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물은 멋진 풍경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원한 멋진 절경이었다. 승려들의 휴식처였다고 하는데, 오늘은 우리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잠시 사진을 찍고 물을 마신 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왓파랏 사원 앞은 시원하게 물이 흐른다. 보기만 해도 멋진 절경.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경사가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트레킹을 많이 해본 카이도 중간중간 신중히 발을 디딜 곳을 찾으며 올라갔다. 그 뒤로 PK가 따라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혹시 PK가 힘들어하면 바로 알 수 있도록. 경사가 높아질수록 내려올 때는 위험하진 않을까, 택시를 타고 집에 가자고 말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힘이 빠질 때면 PK가 태국어로 된 노래를 불렀고, 나는 한국 동요를 불렀다. 왜 하필 곰세마리와 아기상어가 떠올랐지는 알 수 없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의 언어로 된 가사와 리듬에 발을 맞췄다.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이었고, 의지할 수 있는 건 도이수텝까지의 남은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뿐이었다. 혼자였으면 중간에 멈췄을지도 모른다. 함께여서 힘이 났다. 길을 잘못 들어도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정상이 나올거라고.



그리고 드디어 왓프라탓 도이수텝 사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없는 구글 지도의 한복판에서. 지나고 나면 나의 길이 만들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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